제89칙
동산의 풀 없음[洞山無草]
시중 |
대중에게 보이시다.
움직이면 천 길 구덩이에 몸이 묻히고 움직이지 않으면 제자리에서 싹이 난다. 바로 모름지기 양쪽 끝을 흔들어 열고 중간도 놓아버린 뒤에 짚신을 사서 신고 행각을 나서야 한다.
본칙 |
드노라.
동산(洞山)이 대중에게 보이되 "첫가을 늦여름에 여러분은 동쪽이건 서쪽이건 모름지기 바로 만 리에 한 치의 풀도 없는 곳을 향해 떠나야 한다" 하였다.
-고양이를 꾀어서 마른 우물로 들게 한다.
또 이르되 "그 만 리에 한 치의 풀도 없는 곳을 어떻게 가야 할까?" 하니,
-한마디가 이미 입밖에 나오면 준마로도 미칠 수 없다.
석상(石霜)이 이르되 "문을 나서기만 하면 그대로가 풀밭이다" 하였고,
-스스로 발밑을 조심해라.
대양(大陽)은 이르되 "설사 문을 나서지 않는다 하여도 역시 풀이 끝없이 무성하니라" 하였다.
-그대 회피할 곳이 없도다.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석상이 회창(會昌 : 845)의 법란을 만나 속인의 복장으로 장사(長沙) 유양(瀏陽)의 도가방(陶家坊)에 숨었노라니, 대중(大中 : 847~859) 연간 초에 어떤 승이 동산에서 여름을 지내고 지나다가 들렀다. 이때 석상이 묻되 "어디서 오는 길인가?" 하니, 승이 대답하되 "동산에서 옵니다" 하였다. 석상이 다시 묻되 "화상께서 어떤 말씀[言句]으로 제자들을 지도하시던가?" 하니, 승이 대답하되 "화상께서 해제가 가까운 어느날 상당하여 대중에게 이르시기를 '여러분, 첫가을 늦여름에 동쪽이건 서쪽이건 모름지기 바로 만 리에 한 치의 풀도 없는 곳을 향해 떠나야 한다' 하시고, 양구했다가 또 이르시기를 '그 만리에 한 치의 풀도 없는 곳을 어떻게 가야 할까?' 하셨습니다" 하였다. 이에 석상이 이르되 "문득 문을 나서기만 하면 그대로가 풀밭이니라" 하였는데, 그 승이 다시 동산으로 가서 이 일을 동산에게 사뢰니 동산이 이르되 "이는 천오백 명을 제접할 선지식의 말씀이다. 이 대당국 안에 그런 이가 몇 사람이나 될까?" 하였다. 이윽고 주머니 속의 송곳이 저절로 삐져나오고 과일이 익어 향기가 바람에 날리자 대중이 다시 승복을 입고 석상도량에 머무르기를 권하니 과연 오본(悟本 : 洞山)의 수기에 부합되었다.
석상은 이 공안으로 인하여 도예가 천하에 퍼졌는데 나중에 대양 연(大陽延) 선사가 이르되 "지금 당장 문을 나서지 않는다고 하여도 역시 풀이 끝없이 우거졌다. 일러보라, 합당히 어느 쪽을 향하여 행각을 떠나야 되겠는가?" 하고 양구했다가 이르되 "싸늘한 바위에 이상한 풀 푸르다고 좋아하지 말라 / 백운 위에 앉았더라도 종지[宗]는 묘할 것 못 되느니라" 하였고, 원통 선(圓通善) 국사는 이르되 "일러보라. 여러분들이 지금 발꿈치 밑의 한 구절은 어떻게 이르겠는가? 만일 이르기를 '만 리에 한 치의 풀도 없다' 하면 그대들은 동산에게 참문함이 옳고, 만일 이르기를 '문을 나서기만 하면 그대로가 풀밭이라' 한다면 그대들은 석상에게 참문함이 옳고, 만일 이르기를 '문을 나서지 않아도 역시 풀밭이 우거졌다' 한다면 그대들은 대양에게 참문함이 옳고, 만일 아무렇게도 이를 수가 없다면 그대들은 연성(延聖)에게 참문함이 옳으니 무슨 까닭이겠는가? 오직 좋은 바람만이 좌석 위로 불어오니 / 다시는 부질없는 말들이 인간세상에 돌지 않기 때문이니라"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만일 세 구절을 몽땅 이르고자 한다면 다시 천동의 송을 참견하라" 하노라.
송고 |
풀이 우거져 끝없음이여,
-아래로도 밑이 없고 곁으로도 가장자리가 없다.
문 안인지 문 밖인지 그대 스스로 살피라.
-신덜미 풀어졌나 살펴보라.
가시나무 숲에는 발딛기 쉬우나
-묵밭에서 풀을 뽑는다.
달밝은 밤 발[簾] 밖에서는 몸 돌리기 어렵다.
-땅을 맑히다가 도리어 하늘을 잊었다.
조심해라[看看]!
-일에는 섬세함을 싫어하지 말라.
몇 가지인고?
-죽은 나무, 바위 앞에 갈림길도 많구나!
우선 늙은 나무를 따라 함께 추위에 여위다가
-다만 오늘의 의지만 있으면
장차 봄바람을 쫓아 다시 쥐불[燒瘢]로 들어가리.
-반드시 마음에 드는 때가 있으리…….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대양이 이르기를 "설사 문을 나서지 않는다 하여도 역시 풀이 우거져 끝없다" 하였고, 천동은 이르되 "풀이 우거져 끝없음이여, 문 안인지 문 밖인지 그대 스스로 살피라" 하였으니, 마치 이야기를 하되 신경을 쓰지 않고 그저 그 사이를 넘나드는 것 같도다. "문을 나서면 그대로가 풀밭이라" 한 것은 사람들 모두가 알기 쉽고 또 방향을 바꾸기도 쉽거니와, "문을 나서지 않아도 역시 풀밭이라" 한 것은 사람들이 알기 어렵고 또 몸을 돌리기도 힘들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평지 위에서 죽은 사람이 무수하니 가시나무 숲을 통과해야 비로소 좋은 솜씨라" 하였고, 천동은 이르기를 "가시나무 숲에는 발딛기는 도리어 쉬우나 평평하고 조촐한 곳에서 문을 나서지 않다가 달 밝은 밤 발 밖에서는 몸 돌리기 매우 어렵다" 했으니, 이는 모름지기 제각기 정신차려 살필 일이요, 아무도 대신할 이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
천동은 또 이르되 "몇 가지인고?" 했으니, 연성은 네 가지요, 만송은 다섯 가지이나 점검해보건대 마지막 두 구절에서 벗어나지 않나니, 천동은 손바닥 뒤의 경지를 알고자 하는가? 범은 여위어도 영악한 마음은 남았고 사람은 가난해도 의지는 없어지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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