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1칙
남전의 모란[南泉牡丹]
시중 |
대중에게 보이시다.
앙산은 꿈 속으로 진실이라 하였고, 남전은 깬 곳을 거짓이라 했다. 만일 깸과 꿈이 원래 없는 것임을 알면 거짓과 진실이 맞서지 않는 줄을 비로소 깨달으리라. 일러보라, 이 사람은 어떤 안목을 갖추었을까?
본칙 |
드노라.
남전(南泉)에게 육긍대부(陸亘大夫)가 묻되 "조법사(肇法師)는 제법 기특하셨나 봅니다.
-그래 봤자 요동(遙東)의 흰 도야지새끼[白豕]로다.
'천지가 나와 같은 뿌리요, 만물이 나와 같은 바탕이라'고 말 할 줄 알았더군요" 하니,
-두 손가락을 일으켜 세웠구나!
남전이 뜰 앞의 모란(牡丹)을 가리키면서 이르되 "대부여, 요즘 사람들이 이 한 포기의 꽃을 보고는 꿈과 같ㅇ디 여기느니라" 하였다.
-담벽에 걸림없이 편지를 전한다.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당나라 육긍의 자는 경산(景山)이니 오군(吳郡) 사람으로서 벼슬이 선흡(宣歙)관찰사에 이르렀다가 어사대부를 추가받았다. 처음에 남전에게 묻되 "제자가 병에다 거위[鵝]를 길렀는데 차츰 커져서 병에서 꺼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병도 깨뜨리지 않고 거위도 죽이지 않으려면 화상께서는 어떻게 꺼내시겠습니까?" 하니, 남전이 "대부여" 하고 불렀다. 육긍이 "예" 하고 대답하니, 남전이 이르되 "나왔다" 하매, 육긍이 이로부터 깨달았다. 그리하여 마음은 이성(理性)에 두고 「조론(肇論)」에 유희하다가 열반무명론(涅槃無名論) 제7 묘존편(妙存篇)에 이르러 "현묘한 도는 묘한 깨달음에 있고, 묘한 깨달음은 진(眞)에 즉하는 데 있으니, 진에 즉하면 유와 무를 가지런히 관찰하고, 가지런히 관찰하면 너와 내가 둘이 아니다. 그러므로 천지는 나와 같은 뿌리요, 만물은 나와 같은 바탕이다. 나와 같으면 다시 유와 무가 없고 나와 다르면 회통(會通)하는 도리에 어긋난다. 그러므로 벗어나 있지도 않고 얽매어 있지도 않되 도가 그 사이에 존재한다" 한 토막을 보았는데, 육긍이 이 두 구절을 들어 매우 기특하다고 여겼으나 정히 꿈을 이야기하는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변변치 않은 석두(石頭)화상은 「조론」을 보다가 통고(通古) 제17편에 이르러 "대저 지극한 사람은 비고 트이어 형상이 없으되 만물이 모두가 내가 짓지 않은 것이 없나니 만물을 회통하여 자기로 삼는 이는 오직 성인뿐일진더" 한 곳에 이르러 활연히 깨닫고, 이르되 "성인은 자기가 없되 자기 아닌 것이 없도다" 하고는 문득 참동계(參同契)를 지었다.
불과(佛果)가 이르되 "육긍의 그런 물음이 매우 기특하기는하나 겨우 교가의 뜻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만일 교가의 뜻이 극칙이라 한다면 세존은 어찌하여 다시 꽃을 들었으며 조사는 무슨 까닭으로 다시 서쪽에서 왔을까? 남전이 대답한 곳은 납승의 코끝을 써서 그의 병을 드러내고 그의 집착[窠窟]을 깨뜨려주기 위해 마침내 뜰 앞의 모란을 가리키면서 대부를 부르고 이르기를 '요즘 사람들은 이 한 포기의 꽃을 보고 꿈과 같이 여기느니라' 하여, 마치 만 길의 벼랑 위로 데리고 가서 한 번 밀어서 그의 목숨이 끊어지게 한 것같이 했다. 만일 평지 위에서만 밀어버린다면 미륵이 하생하더라도 알지 못하리라" 하였고, 원통 선(圓通善)국사는 불자를 일으켜 세우고 이르되 "모든 유위의 법은 꿈 · 환술 · 거품 · 그림자 같다" 하였는데, 천동은 꿈 속에 일으킨 화서국토(華胥國土)*에 대해서만 송했다.
송고 |
이미(離微) 한 조화의 근원을 꿰뚫어 살피건대
-걸어서 물이 다한 곳에 이르러
분분(紛紛)히 드나드는 데서 그 문호를 본다.
-앉아서 구름이 일어나는 것을 본다.
정신을 겁(劫) 밖에 노닐게 하면서 하유향(何有鄕)*을 묻고
-마음 밖에 법이 없으니
몸 앞으로 눈길을 돌리니 묘한 존재를 안다.
-눈앞에 가득한 청산이라.
범의 휘파람이 소소(蕭蕭)하니, 바위의 울림이 일고
-불을 빌다 보니 연기까지 얻었고
용의 읊조림이 염염(冉冉)하니 골짜기의 구름이 어둡다.
-물을 긷다 보니 달까지 가지고 돌아온다.
남전이 당시 사람들의 꿈을 흔들어 깨우니
-고작 잠꼬대를 좋아했구나!
당당(堂堂)한 보처존(補處尊)을 알게 하라는 것이다.
-그 자리 그대로가 자씨이거니…….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조공(肇公)의 「보장론(寶藏論)」 이미체묘품(離微體妙品)에 이르되 "그 나옴이 미(微)하고 그 들어감이 이(離)하니, 그 들어감이 이임을 알면 바깥 티끌이 의지할 곳이 없고, 그 나옴이 미임을 알면 바깥 마음이 할 바가 없다. 안의 마음이 할 바가 없으면 어떤 소견에도 움직이지 않고, 바깥 티끌이 의지할 바가 없으면 만상이 구속하지 못한다" 하였는데, 천동은 남전을 "이미(離微) 한 조화의 근원을 꿰뚫어 보니 분분히 드나드는데서 그 문을 본다"고 송했으니, 나옴이 미하고 들어감이 이한 두 문은 다만 한 문에서 안팎으로 나뉘었을 뿐, 실은 시방(十方)에 벽이 없고 4면에도 또한 문이 없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신을 겁 밖에 노닐게 하면서 하유향을 묻는다" 함은 천지가 같은 뿌리라 한 대목을 송한 것이요, "몸 앞으로 눈길을 돌리니 묘한 존재를 안다" 한 것은 만물이 한 바탕이라 한 대목을 송한 것이다. 뿌리와 바탕이 능히 천지의 만물을 내는 것이 마치 용이 읊조리면 안개가 일어나고 범이 휘파람을 불면 바람이 일어나듯 하니, 감(感)이 있는 곳엔 반드시 응함[應]이 있다. 그러므로 뜰 앞의 한 포기의 꽃에서 온 천하의 봄꽃을 두루 보는 것이다.
만송이 꿈을 이야기한 것이 있는데 먼저 잠들지 않은 사람이 있고, 그 다음에 잠이 있으며, 잠을 인하여 모르는 결에 꿈이 있고, 꿈을 인하여 경계를 보고, 경계를 인하여 따로이 이 한 몸이 있음을 보고 경계 가운데서는 수용(受用)할 물건들을 분별하거니와 만일 항상 잠들지 않는 사람을 알아본다면 그 많은 갈등(葛藤)들은 한 붓으로 그어내릴[一筆句下] 것이다. 보처자존(補處慈尊)을 알고자 하는가? 여기서 만일 근원을 파헤치지 못하거든 바로 미륵의 탄생을 기다렸다 물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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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서국토(華胥國土) : 황제(黃帝)가 낮잠을 자다가 꿈에 화서라는 나라에 가서 이상적으로 잘 다스려지는 상황을 보았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 태평한 나라 · 꿈 · 안심자득(安心自得)의 경지 등을 비유한다.
* 하유향 : 아무 할 일 없이 소요(逍遙)하는 무위(無爲)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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