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칙
운문의 한 보배[雲門一寶]
시중 |
대중에게 보이시다.
유희신통대삼매(游戱神通大三昧)를 얻고 중생어언다라니(衆生語言陀羅尼)를 알아서 목주(睦州)의 진나라 때 찬[秦時車+度轢鑽]*을 끌어 굴리고 설봉(雪峰)의 남산별비사(南山鱉鼻蛇)*를 가지고 놀 수 있다 하여도 이 사람을 알아보겠는가?
본칙 |
드노라.
운문(雲門)이 대중에게 보이되 "건곤의 안과
-건곤을 둘러 싼 것인데, 척(聻)
우주 사이에
-우주를 성립시킨 것인데, 척(聻)
그 속에 보배 하나가
-믿지 못하겠거든 품안을 더듬어보라.
형상의 산 속에 감추어져 있다.
-형산의 산 그대로가 보배인데…….
등롱(燈籠)을 들어다가 불전 안으로 옮기고
-벌써 나귀가 우물을 들여다보는 격인데
삼문(三門)을 들고서 등롱 위로 온다" 하였다.
-우물이 나귀를 바라보는 꼴을 어찌 견디랴.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운문대사는 이런 동작을 좋아했으니, 몹시 바쁘고 백 가지로 시끄러운 도중에서 몸을 솟구치는 것이었다. 어느날 대중에게 조공의 「보장론(寶藏論)」을 들어보였는데 만일 온전하게 든다면 "대저 천지의 안과 우주의 사이에 한 보배가 형상의 산 속에 숨어 있다. 물건을 알 때엔 텅 비게 비추되 안팎이 공적하고 적막해서 견(見)을 여의었으나 그 용(用)은 현현(玄玄)하다" 라고 되어 있었다. 설두가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건곤의 안과 우주의 사이에 한 보배가 벽 위에 걸려 있다. 달마도 9년 동안 감히 눈을 바로 뜨고 보지 못했다. 지금의 납승들이 그것을 보고자 한다면 당장에 등줄기를 갈겨주리라" 하였다.
원통(圓通) 국사가 이르되 "덕산의 자손됨이 잘못이 아니로다" 하였는데, 본록(本錄)에는 "삼문을 들고서 등롱 위로 온다 했으니 어찌하여야 하는가?" 하고는, 스스로 대신 이르되 "물건을 따라서 뜻이 바뀐다" 하였고, 또 이르되 "우레가 이니 구름이 일어난다" 하였다고 했다.
불과(佛果)가 이르되 "구마라집은 조공이 배운 스승이요, 와관사(瓦官寺)의 불타발타라(佛馱跋陀羅)는 여기 이름으로는 각현(覺賢)이라 하는데 법사의 법을 이었다" 하였다. 그런데 무진등(無盡燈)은 법사를 각현의 법손 줄에다 열거했고, 각현은 서천축의 불대선(佛大先)의 법을 이었고 불대선은 달마와 함께 제27조 반야다라(般若多羅)를 섬겼다고 하였다.
승조가 형을 받게 되던 날, 7일의 여가를 빌어 「보장론」을 지었는데 운문이 들어서 대중에 보이되 "그대들을 좌주처럼 의리나 해석하게 할 수 없고, 오직 그대들이 주를 내보기 바란다" 하였다. "등롱을 들어다 불전 안으로 옮긴다" 하였으니, 이는 상정으로 가히 헤아릴 수 있거니와 "삼문을 들고서 등롱 위로 온다" 한 것을 상정으로 헤아려낼 수 있겠는가? 본분종사라면 끝내 실다운 법으로 사람을 묶어두지 않는다. 그러므로 설두가 이르되 "그 안에 보배 하나가 있어 벽 위에 걸려 있다" 하였거니와, 만일 천동이 빌려다 써주지 않았더라면 자칫 재고품[滯貨]이 될 뻔했도다.
송고 |
남아도는 생각을 거두어들이는 일의 번거로움이 싫어서이니
-물이 깊으면 파도가 조용하고 배움이 넓으면 말 소리가 나직하다.
고향으로 돌아와 보니 어디가 내 삶의 터전이던가?
-거드름을 피우지만 살 곳도 모르는구나.
도끼자루 썩인 나무꾼은 길을 잃었다고 의심했는데
-해와 달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나무에 걸린 호공(壺公)에게는 별다른 세계가 있네.
-행여 딴 천지가 아니었던가.
밤의 강물, 금빛 파도에 계수나무 그림자 띄우고
-위로 뚫리고 아래로 통했다.
가을 바람 눈발 서릴 때 갈대꽃을 껴안았다.
-크고 작음이 명백하구나.
싸늘한 물고기는 깊이 처져 입질을 않는데
-낚시만 공연히 드리웠다.
흥이 다하자 맑은 노래에 뱃머리를 돌린다.
-다시 바람에 불려 딴 곡조가 되었다.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물이 바다로 돌아가니 파도가 조용하고 구름이 창오(蒼梧 : 상제의 궁전)에 이르니 기상(氣象)이 한가롭다. 그러기에 이르되, 서로 욕하기를 부리 맞대듯 하더라도, 서로 침 뱉기를 물 뿌리듯 하더라도 이는 운문에 있어서는 "남아도는 생각을 거두어들이는 일의 번거로움[事華]이 싫어서"에 해당한다. 번거롭다는 화(華)자는 두 가지로 쓰이니 첫째는 꽃을 버리고 열매를 취한다는 뜻이요, 둘째는 일이 많아 번화함을 싫어한다는 뜻이다. "고향에 돌아오니 어디가 삶의 터전인고?"라고 한 윗구절은 「보장론」에서 나온 것이요, 아랫 구절은 운문의 착어(着語)로서 어느 곳에서 더듬어 찾을꼬? 함이니, 만일 고동을 멈추고 우두커니 생각하여 한 생각이 만 년 간다면 설사 도끼자루가 썩는다 하여도 역시 더딘 바둑을 둔하게 행마(行馬)하는 것이다.
앞(제57칙)에서 엄양(嚴陽)이 조주를 만나는 화두를 송한 곳에도 도끼자루를 썩인 나무꾼의 이야기가 본전(本傳)에 있고, 또 앞(제50칙)에서 설봉의 마지막 구절을 송한 곳에도 호공(壺公)이 나무에 걸려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본전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비장방(費長房)이 보니 호공이 약을 파는데 에누리[二價]를 하지 않고, 항아리를 나무에 달아놓고는 항아리 속으로 홀짝 뛰어드는 것이었다. 비장방이 누대 위에서 보다가 예사로운 사람이 아님을 알고는 이르되 "소제하고 음식 바치는 일을 사양치 않으리라" 하였다. 오래되자 그의 돈독한 믿음을 알고는 호공이 이르되 "해가 져서 아무도 없을 때 오시오" 하였다. 그리고는 "나를 따라 뛰어드시오" 하매, 비장방도 그 말에 따라 항아리 속으로 뛰어드니 누대가 있고 5색의 겹문이 있으며 좌우에는 수십 명의 시자가 늘어서 있었다고 한다.
이상의 두 구절 중 윗 구절은 「보장론」을 송한 것이요, 아랫 구절은 운문의 말씀을 송한 것이다. 다음의 두 구절 중 첫 구절은 분명함을 송한 것이요, 다음 구절은 명백함을 송한 것이니, 그는 「보장론」의 뜻은 비록 명백하고 분명하지만 몇 사람이나 알아듣겠는가 함이다. 이에 운문이 그 변화를 틔워서 한 가닥의 살 길을 지적해내되, "싸늘한 물고기는 깊이 처져 입질을 않는데"라고 했으니, 이는 강자(舡子)의 "밤은 고요하고 물은 차서 고기가 물지 않으니" 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금빛 파도[金波]와 계수나무 그림자[桂影]는 배에 가득한 밝은 달이니, 금빛 파도와 계수나무 그림자는 달의 별명이다.
천동은 이르기를 "맑은 빛이 눈[眼]에 비치니 집을 잃은 것 같다" 하였고, 조주는 이르되 "노승은 밝고 흰 속에 있지 않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흥이 다하자 맑은 노래에 뱃머리를 돌린다" 한 것이다. 일러보라. 어느 곳을 향해 갔는가? 밤이 깊어도 갈대포구[蘆灣]에 가서 자지 않으니 아득히 중간과 양쪽 끝을 초월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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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문스님이 목주스님을 처음 찾아갔을 때 목주스님이 문을 콱 닫는 바람에 운문스님의 다리가 부러졌다. 그렇게 해놓고는 목주스님이 "이런! 진나라 탁락찬[車+度轢鑽 : 만리장성을 쌓던 기계]이었잖아!" 하자, 운문스님은 이 말끝에 깨쳤다.
* 설봉스님이 대중법문을 하였다. "남산에 자라코 독사뱀이 한 마리 있으나 여러분은 각별히 조심해 다녀라" 그러자 장경(長慶)이 나서서 "오늘 방 안에 있는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었도다" 하였고, 운문은 주장자를 설봉스님 앞에다 던지면서 벌벌 떠는 시늉을 했다. 나중에 한 스님이 현사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자 현사는 "장경사형이라야 이럴 수 있지. 그러나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다" 하였다. 그 스님이 어찌하겠느냐고 묻자 현사는 "남산을 들먹여 무엇하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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