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3칙
노조의 알지 못함[魯祖不會]
시중 |
대중에게 보이시다.
형산(荊山)의 옥으로 까치를 좇고 늙은 쥐가 금을 물어온다. 그 보배를 알지 못하면 그 쓰임새를 얻지 못하나니 옷 속의 구슬을 활짝 깨달을 자가 있는가?
본칙 |
드노라.
노조(魯祖)가 남전(南泉)에게 묻되 '마니주(摩尼珠)를 아는 이가 없으나 여래장(如來藏) 안에서 친히 거두어 얻을 수 있다' 하였는데,
-제 자랑을 하지 말지!
"어떤 것이 장(藏)입니까?" 하니
-법당의 앞이요, 불전의 뒤다.
남전이 이르되 "내[王老師]가 그대와 왕래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니라" 하였다.
-무엇이 그리 급하던고?
노조가 다시 묻되 "왕래하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니,
-머리를 이야기할 때 꼬리를 알고 떠남을 고할 때 올 것을 안다.
남전이 이르되 "역시 장이니라" 하였다.
-한 살림을 양쪽에서 하는구나!
노조가 다시 묻되 "어떤 것이 구슬입니까?" 하니,
-하나를 얻고는 둘을 바란다.
남전이 "사조(師祖)여" 하고 불렀다.
-노승이 드러내보이지 않은 적이 없고
노조가 대답하니,
-그대 또한 가지고 오지 않은 적 없다.
남전이 이르되 "가거라, 그대는 내 말을 알지 못한다" 하였다.
-평생의 간담(肝膽)을 남에게 털어놓았다.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종남산(終南山) 운제(雲際)의 사조(師祖)선사는 남전의 법을 이었는데 천동이 잘못 알아 노조(魯祖)라 했다. 여기서 가려보겠으니, 학자들은 알아야 한다. 우선 지주(池州)의 노조산(魯祖山) 보운(寶雲)선사는 마조의 법을 이었으니 남전의 형이 된다. 그런데 사조라고 남전이 이름을 들어 불렀으니 이 공안으로 살피건대 남전의 제자임이 틀림없다.
처음에 남전에게 묻되 "마니주를 아는 이가 없으나 여래장 안에서 친히 거두어 얻을 수 있다" 하였으니, 이 말은 본래 영가(永嘉)선사의 「증도경」에서 나온 것이다. 범천 기(梵天琪)화상의 주에 이르되 "범어의 마니는 번역하면 여의(如意) 또는 무구광(無垢光) 또는 증장(增長)이다" 하였다. 「능가경(楞伽經)」에는 이르되 "적멸(寂滅)은 일심(一心)이라 이름하고, 일심은 여래장이라 이름하는데 세 가지 뜻을 갖추었다. 첫째는 가리워 덮는다는 뜻[隱覆義]이니 여래를 덮어 감추기 때문이요, 둘째는 머금어 거둔다는 뜻[含攝義]이니 모든 중생과 국토를 머금어 거두기 때문이요, 셋째는 낸다는 뜻[出生義]이니 능히 무루(無漏)의 인과와 인천(人天)의 도행을 내기 때문이다" 하였으니, 처음은 미혹할 때의 경지요, 나중은 깨달았을 때의 경지요, 중간은 본체를 지적한 것이다. 또 「승만경(勝鬘經)」에서는 두 가지 여래장을 설한다. 첫째는 공여래장(空如來藏)이니 온갖 번뇌를 벗어나 여의었기 때문이요, 둘째는 불공여래장(不空如來藏)이니 항하사보다 많은 불사(不思)의 불법을 구족했기 때문이다.
종남산 운제사의 사조선사가 처음 남전에 있을 때 "마니주를 아는 이가 없으나……"를 물었고 또 "구슬"을 물었는데 남전이 이르되 "가거라, 너는 내 말을 알지 못한다" 하매, 사조가 이로부터 믿어 들어갔다. 원통(圓通)국사가 이르되 "지금에도 믿어 들어가는 자가 있는가? 만일 있다면 망상(罔象)이 이를 때에 빛이 찬란하고, 만일 없다면 이루(离婁)가 떠나는 곳에 파도가 충천할 것이다" 하였다. 불과(佛果)는 이르되 "온 땅덩이가 그대로 여래장이거니 어디에다 마니주를 둘 것이며, 온 땅덩이가 그대로 마니주이거니 무엇을 일러서 여래장이라 하겠는가?" 하였고, 설두(雪竇)는 다르게 이르되 "험한 백 자 장대 끝에서 광대놀이를 하는 것은 좋은 솜씨가 아니다. 거기에다 눈길을 돌려 손과 주인을 엇바꿀 수 있어야 능히 범의 굴에 깊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설사 사조가 깨달았다 해도 역시 용두사미(龍頭蛇尾)일 것이다. 머리와 꼬리가 완전한 것을 보기를 요한다면 역시 천동화상이어야 할 것이다.
송고 |
시비를 나누고 득실을 밝히며
-눈 속에 힘줄이 있구나.
마음에 응하고 손바닥에 지적한다.
-견처가 활짝 트이고 활용이 명백하다.
왕래하건 왕래하지 않건
-끝내 그와는 관계치 않는 일이다.
그저 모두가 장(藏)이니,
-이렇건 저렇건 모두가 옳다.
윤왕(輪王)은 공 있는 자에게 상을 주었고
-청렴한 자는 취하지 않고 탐하는 자는 주지 않는다.
황제(黃帝)는 형상 없는 망상(罔象)에게 얻었다.
-이미 몸과 마음으로 수고를 했군!
고동[樞機]을 돌리고 기량에 능숙하니
-모든 것이 그대만 못하다.
눈밝은 납승은 갈팡질팡[鹵莽] 않는다.
-일에는 섬세함을 싫어하지 않는다.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심주가(心珠歌)와 완주음(玩珠吟)에는 이 구슬을 여의주(如意珠)라고 많이 표현하고 여래장이라고 말한 데는 적은데 오직 영가의 일숙각(一宿覺)은 "여래장 안에서 친히 거두어 얻을 수 있다" 하였고, "여섯 가지 신기로운 작용은 공한 듯하되 공하지 않고 한 알의 둥근 광채는 빛이로되 빛이 아니다" 하였다. 여기서 어떤 것이 장(藏)이며, 어떤 것이 구슬인가? 왕래하는 것이 그것인가? 왕래하지 않는 것이 그것인가? 그 속에서 그대들이 시비를 가려내고 사활을 밝혀낸다면 마음에 응하는 대로 손에 얻으리라. 손바닥에 지적한다[指掌] 함은 본래 「논어(論語 : 八佾)」에서 나왔다. 남전의 손바닥을 지적하고 구슬을 지적함이 마치 그대의 손바닥에다 놓아주듯 그대에게 보여주었으니 왕래하건 왕래하지 않건 그대로가 장이요, 응한다거나 응하지 않는다거나에 모두가 구슬이거니 무엇을 의심하겠는가? 일러보라. 구슬에서 장이 나오는가, 장에서 구슬이 나오는가? 한 덩어리로 만들어서 다시 두 토막으로 나누었도다.
「법화경」에서 부처님이 문수사리에게 이르시되 "전륜왕이 병사들 가운데 큰 공이 있는 자를 보면 매우 기뻐하면서 이 믿기 어려운 구슬을 오랫동안 상투 속에 숨겨두어 함부로 남에게 주지 않았던 것인데 이제 주노라" 하였고, 황제(黃帝)가 망상을 시켜 구슬을 찾아냈다고 하였으니, 수산의 3구(제76칙)에서 이미 밝힌 바가 있다. 고동바퀴[機輪]가 도는 곳에 지혜로운 눈이 도리어 흘린다고 전(제40칙)에 말하였는데, 만일 재주[伎倆] 없는 가운데서 능히 재주를 부리는 이가 아니면 "가거라, 그대는 나의 말을 알지 못한다"고 능히 말하지 못했을 것이니, 운제는 거기서 깨달은 것이다.
동산(洞山)이 이르되 "기쁨이 없지 않으니 마치 쓰레기 더미에서 한 알의 밝은 구슬을 얻은 것과 같다"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나는 작은 이익을 보고 기뻐한 비렁뱅이 동산 같지는 않으니 이는 기쁨이 기쁨이 아니어서 여래장 안에서 한 알의 밝은 구슬을 쳐부수는 것 같다"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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