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종용록從容錄

종용록 下 제95칙 임제의 한 획[臨濟一畫]

쪽빛마루 2016. 6. 3. 18:51

제95칙

임제의 한 획[臨濟一畫]

 

 

시중

 대중에게 보이시다.

 부처가 와도 때리고 마구니가 와도 때린다. 이치가 있어도 삼십 방망이요 이치가 없어도 삼십 방망이다. 이는 원수를 잘못 안 것인가, 아니면 양민을 가려낼 줄 몰라서인가? 일러보라.

 

본칙

 드노라.

 임제(臨濟)가 원주에게 묻되 "어디서 오는가?" 하니,

 -손뼉을 탁 치면서 이르되 "여기서 옵니다" 했어야 할 것인데…….

 

 원주가 이르되 "고을에 가서 황미(黃米)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하였다.

 -제법 착실하군!

 

 임제가 다시 묻되 "살 것을 다 샀느냐?" 하니,

 -풀숲에 들어가서 사람을 찾는구나.

 

 원주가 대답하되 "다 샀습니다" 하였다.

 -양쪽에다 짐을 메니 고개를 돌리지 못하는구나.

 

 임제가 주장자로 한 획을 긋고는 이르되 "이것도 샀느냐?" 하니,

 -왜 이리 급하실꼬?

 

 원주가 문득 할을 하매

 -두꺼비의 외침이구나!

 

 임제가 문득 때렸다.

 -손에 몽둥이를 숨겼구나!

 

 다음에 전좌(典座)가 오매 앞의 일을 이야기하니

 -자랑을 그만두지!

 

 전좌가 이르되 "원주는 화상의 뜻을 모릅니다" 하였다.

 -입이 재앙의 문이거늘!

 

 임제가 이르되 "그러면 그대는 어떠한고?" 하니,

 -몸의 꼭대기까지 올라왔도다.

 

 전좌가 문득 절을 하매

 -더욱 꼴불견이 되는구나!

 

 임제가 또 때렸다.

 -손놀림이 빠르구나.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본록(本錄)에는 전좌가 없고, 공양주(供養主)에게 묻되 "어디서 왔는가?" 하니, 공양주가 대답하되 "고을에 가서 황미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하였다. 임제가 이르되 "살 것을 다 샀는가?" 하니, 공양주가 이르되 "다 샀습니다" 하였다. 임제가 주장자로 한 획을 긋고 이르되 "이것도 다 샀는가" 하니, 공양주는 문득 절을 하매 임제가 이르되 "그래도 좀 모자란다" 하였다고 되어 있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아무런들 어떠리요? 원주가 방망이를 맞은 것은 상(賞)에는 원수를 피하지 않는다는 도리요, 공양주가 칭찬을 받은 것은 벌[誅]에는 골육도 가리지 않는다는 도리일 것이다" 하노라. 천동은 완벽한 영[盡令]에 의거해 시행해서 온전한 기틀과 큰 작용을 보고자 하여 다음과 같이 송했다.

 

송고

 임제의 온전한 기개는 격조가 높으니

 -한 대 갈겨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방망이 끝에 눈이 있어 가을 터럭을 알아본다.

 -한 점도 속이기 어렵다.

 

 여우와 토끼의 자취를 쓸어버리니 가풍이 준엄하고

 -사자의 온전한 위엄이다.

 

 고기가 용으로 변화하니 번갯불이 튄다.

 -알량한 신통이구나.

 

 사람을 살리는 검이요

 -그래도 좀 모자란다.

 

 사람을 죽이는 칼이니,

 -이 칠통아!

 

 하늘에 기대어 눈발에 번득이는 취모검이로다.

 -누가 감히 바로 쳐다보겠는가?

 

 한결같이 영을 행하나 재미는 각각 다르니

 -이 초(醋)는 몹시도 시구나!

 

 죽도록 아픈 곳이야 뉘라서 느낄 것인가?

 -때리면서 이르되 "너다, 너다" 하리라.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임제가 때로는 사람은 빼앗고 경계는 빼앗지 않고, 때로는 사람과 경계를 모두 빼았았는데 만일 거기에 해당하는 사람을 만나면 문득 온몸으로 작용했으니 이것이 임제의 격조가 높다는 것이다. 손 위에서 나오면 손 위에서 치고, 눈 위로 나오면 눈 위에서 치고 4방 8면에서 오면 돌개바람으로 친다는 것이다.

 이루(离婁)는 황제(黃帝) 때 사람이니 백 리 밖의 가을 털끝을 볼 수 있었다. 임제는 방망이 끝에 눈이 있어 밝기가 일월 같아 반 점의 가림도 용납하지 않았으니 이는 여우나 토끼의 자취를 쓸어버릴 뿐 아니라 도리어 능히 고기를 용으로 변화시킨다. 고기가 우문(禹門)의 세 단계를 뛰어오를 때 우레와 번개가 치면 꼬리가 타서 용이 되니 방망이와 할의 날쌤이 이와 같다는 것이다.

 우리의 몸에서 떠나지 않는 일곱 가지가 있는데 사람을 죽이는 검과 사람을 살리는 칼이 들어 있다. 부산(浮山) 원감(圓鑑) 원록공(遠錄公)이 열여섯 가지 제목을 내어 투자 의청(投子義靑)으로 하여금 송하게 하였는데, 거기에도 사람을 죽이는 칼과 사람을 살리는 검이 이야기되고 있다. 설두가 파릉(巴陵)의 취모검(吹毛劒)을 송하는데 "평정코자 하되 평정하지 못하니 / 솜씨 좋은 이는 졸렬한 것같이 보인다 / 혹은 손가락에서 혹은 손바닥에서 / 하늘에 기대어 눈발을 비추도다" 하였고, 송옥(宋玉)의 대언부(大言賦)에 이르되 "모난 땅을 여(輿)라 하고 둥근 하늘을 개(蓋)라 한다. 굽어진 활은 부상(榑桑)을 향해 쏘고 긴 검은 하늘 밖에 기대 있다" 하였는데, 어떤 승이 묻되 "어떤 것이 취모검입니까?" 하니, 임제가 대답하되 "위험하다, 위험하다" 하였다.

 듣지 못했는가? "덕산의 털털한 초는 먹어본 이라면 그 신맛을 안다" 하였는데, 임제의 작용은 황벽에게서 나와 전해지면서 약해지지 않았다. 죽암(竹庵)이 이르되 "얼굴에다 세 주먹 쥐어지르고 뺨에다 일곱 대 갈겨주었건만 온 누리 사람들이 모두가 아픔도 가려움도 모르는데 오직 한 사람만이 아픔을 느끼나 아직은 치료를 받고 있다" 하였다. 그러나 보지 못했는가? 임제가 이르되 "마치 쑥대로 터는 것 같더라" 하였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