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7칙
광제의 복두건[光帝幞頭]
시중 |
대중에게 보이시다.
달마가 양무제에게 알현[朝]한 것은 본래 마음을 전하기 위함이요, 염관(鹽官)이 대중(大中 : 宣宗)을 알아본 것은 안목을 갖추었다 해도 무방하거니와 천하가 태평하니 국왕이 장수하고 천자의 위엄을 범하지 않으며, 해와 달이 경관을 때맞춰 멈추니 사시가 화적하고 광채 있는 곳에 바람결같이 감화시킨다. 그러나 인왕(人王)과 법왕(法王)이 서로 만날 때엔 합당히 무슨 일을 의논할까?
본칙 |
드노라.
동광제(同光帝)가 흥화(興化)에게 이르되 "과인이 중원의 보배 하나를 얻었는데
-제발 자랑일랑 좀 그만두지!
아무도 값을 매기는 이가 없소" 하니,
-나라를 기울여도 바꾸지 못한다.
흥화가 이르되 "폐하의 보배를 보여주소서" 하였다.
-기회[便]를 틈타 세도가를 만나는구나.
광제가 두 손으로 복두건 꼬리를 끌어당겨 보이매,
-다행히 그럴 사람을 만났구나!
흥화가 이르되 "군왕의 보배를 누가 감히 흥정하겠습니까?" 하였다.
-양쪽이 서로 만족하니 별달리 불평이 없다.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위부(魏府)의 흥화 존장(興化存奬)선사는 처음 임제에게 의지했으나 임제가 입적하매 삼성(三聖)의 회상에서 수좌(首座)의 소임을 맡았다. 나중에 대각(大覺)을 본 뒤 개당하고 염향(拈香)하면서 이르되 "이 한 개비 향의 본분(本分)을 삼성 사형에게 드리자니 대각은 나에게 지나치게 헤펐으니 스승 임제에게 공양하는 것만 못하다" 하였다.
어떤 승이 묻되 "4방과 8면에서 올 때엔 어찌합니까?" 하니, 흥화가 대답하되 "중간의 것을 치느니라" 하였다. 승이 절을 하니, 흥화가 이르되 "대중아, 흥화가 어제 동네의 재에 갔는데 도중에서 폭풍과 폭우를 만나 신묘(神廟) 속으로 들어가서 피했느니라" 하였다.
나중에 당의 장종(莊宗)이 하북(河北) 지방으로 행차한 일이 있었는데 어떤 승이 묻되 "왕의 노정에 한계가 있을 때가 어떠합니까?" 하니, 흥화가 이르되 "날마다 5백의 수레를 달리느니라" 하였다. 위부의 행궁(行宮)으로 돌아와서 흥화를 불러 자리와 차를 권한 뒤에 묻되 "짐이 중원을 얻을 때 하나의 보배를 얻었는데 아무도 값을 매기는 사람이 없소" 하니, 흥화가 이르되 "폐하의 그 보배를 좀 보여주소서" 하였다. 황제가 두 손으로 복두건의 끝을 끌어다 보이니, 흥화가 이르되 "군왕의 보배를 누가 감히 값을 매기겠습니까?" 하매, 황제가 크게 기뻐하면서 자의(紫衣)와 사호(師號)를 하사하려 하였으나 흥화가 모두 받지 않으매 황제는 다시 어마(御馬) 한 필을 하사했다. 만송은 이르노니 "첫째 자신이 군왕임을 알아야 되고, 둘째 중원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한 뒤에 그 보물의 값을 물어야 한다" 하노라.
현각(玄覺)이 징(徵)하되 "일러보라. 흥화는 동광제를 긍정한 것인가, 긍정치 않은 것인가? 만일 긍정했다면 흥화의 안목이 어디에 있으며 만일 긍정치 않았다면 동광제의 허물이 어디에 있는가?"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공생(空生 : 수보리)이 「금강경」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여 의심나는 점을 물은 것이 천하에 가득하더라" 하노라.
설두(雪竇)가 이르되 "지존(至尊)이 얻은 바는 다만 곁에서 넘겨다볼 뿐인데 만일 본분작가 흥화가 아니었더라면 가끔 지나치게 비싼 값을 매겼을 것이다"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마치 굶고 온 사람 같구나" 하노라.
취암 지(翠岩芝)가 이르되 "흥화가 그때에 쓴 한 수는 가히 명정(酩酊)이라 하리니, 지금 누가 어떻다 판단할 것인가?"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방망이를 맞은 뒤에 안건을 판별(判別 : 재판)하는구나!" 하노라. 운봉 열(雲峰悅)이 이르되 "참됨은 거짓을 가리지 못하고 굽은 것은 곧은 것을 갈무리하지 못하나니, 눈 있는 자는 가려내보라"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그 눈먼 자에게 물으라" 하노라. 황룡 심(黃龍心)이 이르되 "흥화가 한때 기미를 보고 움직였거니와 그러나 한 조정의 천자를 짓밟은 것이야 어찌하겠는가? 그때 그저 이르기를 '방합(蚌蛤) 속의 구슬을 얻기는 했으나 아무 쓸모도 없소' 했더라면, 그에게 뒷날에 다른 살길이 있게 되서 서로서로 둔하게 만드는 폐단을 면할 수 있었을 터이다. 지금에 누군가가 또 그렇게 묻는다면 무엇이라 대답할꼬?"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칠구는 육십삼이다" 하리라.
이 한 떨거지의 노장들을 통틀어 살피건대 감히 값을 매길 이가 하나도 없는데 오직 천동만이 물건을 살피기와 값 매기기에 양쪽으로 흠이 없다.
송고 |
군왕이 속마음으로 지음자(知音者)와 대화하니
-한마디 착한 말을 발표하면
천하가 정성을 기울이기 해바라기 같도다.
-천 리 밖이 복으로 응한다.
중원의 값 매길 수 없어 비싼 보배 끄집어내니
-두 손으로 몽땅 내어주니
조벽(趙璧)이나 연금(燕金)과는 비길 바 아니네.
-별다른 전가의 보배로세.
중원의 보배를 흥화에게 내어주니
-내어줌이 분명하다.
한 떨기 광명은 값을 정하기 어려워라.
-스스로 사고, 스스로 팔지.
황제의 업적이여, 만 세의 스승에 될 만하니
-옛과 오늘을 찢어 깨뜨리다.
금 수레가 네 천하를 밝게 비치도다.
-아직도 그 덕화가 남아 있도다.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동광(同光)이라 함은 연호이니, 마치 대중천자(大中天子)가 곧 선종(宣宗)인 것과 같다. 후당(後唐)의 장종(莊宗)이 즉위한 지 3년 계미에 동광 원년이라고 기원을 고쳤던 것이다.
"중원의 한 보배"라 하였으니 이미 억지로 지은 이름이다. 끝내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약삭빠른 천동은 다만 이르기를 "군왕이 속마음으로 지음자에게 대화했다"고만 말했는데 그 장종의 전적[行兵]을 살피건대 진정부(眞定府)에서 출발하여 중산(中山)을 굴복시키고, 어양(漁陽)과 위단(魏慱)을 차지하고 이어 말을 달려 강을 건너니 양씨가 나라를 잃어주었고, 군사를 집결하여 서쪽을 향하니 검각(劍閣) 지방마저 지켜내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르되 "중원의 한 보배를 얻기는 했으나 아무도 값을 매겨주는 이가 없다"고 한 것이니, 이는 납승의 분상에서 보면 아직 지음자를 만나지 못했고 특별한 사람을 만나지 못해 끝내 쥐었다 폈다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흥화가 정성을 기울여 천부(天府)의 큰 보배를 감히 저버리지 못했으니 해바라기가 해를 향하여 기울어지되 발을 호위한 격이요, 월족(刖足)의 형을 받은 까닭은 포장자(鮑莊子)가 해바라기만 못하다는 격이다.
"중원의 값 매길 수 없이 비싼 보배를 끄집어낸다" 한 것은 복두건의 끝을 끌어당겨 보인 부분을 송한 것이니, 전륜왕의 상투 속의 구슬을 경솔히 남에게 줄 수 없기 때문인 것이다.
고래로 천자와의 대화에서 장종과 같이 때와 기연을 잘 활용한 이가 없었으니, 이른바 불사와 인정이 동시에 두루하고 만족하다는 것이다. 어떤 관리가 귀종(歸宗)을 뵙고 물었는데 귀종이 모자의 양쪽 끈을 당겨 보이면서 이르되 "알겠는가?" 하였다. 관리가 대답하되 "모르겠습니다" 하니, 귀종이 이르되 "노승이 머리에 풍병이 있어서 그러니 모자를 벗지 않는다고 수상하게 여기지 말아 주시오" 하매 관리가 말이 없었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한신(韓信)의 높은 공에 누가 감히 같을수 있으랴? 몸을 날려 연운잔(連雲棧 : 요새)을 부수어버렸노라" 하노라.
조국(趙國)에 화(和)씨의 구슬[璧]이 있었는데 연(燕)의 소왕(昭王)이 대를 쌓고 천 금을 그 위에 쌓아놓은 뒤 천하의 선비를 불러 연회했던 일이 있으므로 천금대(千金臺)라 한다.
또 송하기를 "중원의 보배여, 한 떨기의 광명이 하늘을 비추고 땅을 비춘다" 했는데, 남전이 이르되 "귀하지도 않고 천하지도 않으니 어떻게 값을 매길꼬?" 했으니 그러기에 값을 매기기 어렵다는 것이다. 금륜왕(金輪王)은 네 천하를 다스리고, 은륜왕(銀輪王)은 세 천하를 다스리고, 동륜왕(銅輪王)은 두 천하를 다스리고, 철륜왕(鐵輪王)은 한 천하를 다스리나니 모두 알 것이다. 금륜왕이 비록 칠보를 가졌지만 겨우 네 천하만을 밝게 비춘다. 그러나 그것은 중원의 한 보배가 온통 시방법계를 한 떨기 광명으로 비추는 것만은 못하다.
그렇거늘 흥화가 경솔히 문득 이르되 "폐하의 보배를 좀 보여주십시오" 한 것은 참을 수 없이 괘씸한 일이겠으나 동광제는 당대의 천자로서 큰 단월(檀越)이 되어 그에게 베풀어주었으니 가히 '작가인 군왕은 천연(天然)으로 있다 하리로다. 삼각 법우(三角法遇)가 대중에게 보이되 "무릇 설법하는 자는 모름지기 때에 맞추고 시절에 응해야 한다" 하였는데, 암자를 맡게 되자 어느날 도적이 들어 칼을 들고 묻되 "화상은 값진 보배를 내놓으시오" 하였다. 이에 삼각이 이르되 "승가의 보배는 그대들에게는 필요치 않을 것이니라" 하니, 도적이 이르되 "어떤 보물이요?" 하매, 삼각이 문득 할을 했더니 도적이 알아듣지 못하고 칼을 들어 해쳤다. 만송은 항상 이 일을 우습게 생각하고 있노라.
법우(法雨)가 송하되 "꼭대기에다 띠집을 짓고 삼각산에 사노라니 / 가보(家寶)랄 것 별달리 깊이 간직 못했네 / 창졸간에 주머니 열어 감정하는 사람 속여주니 / 변화가 월족(刖足)의 벌 받은 것 어찌 잘못이겠는가? / 잘못 걸주(桀紂)를 만났음이여, 헛되이 예절만 갖추었으니 / 흥화와 장종이 화기를 깨뜨리지 않은 격보다는 전혀 못하네" 하였다.
어떤 승이 법운 원통 수 철벽(法雲圓通秀鐵璧)에게 묻되 "스님께서는 주머니 속에 보물을 간직하셨다고 오래 전부터 듣고 있습니다. 오늘 법연을 연 기회에 좀 보여주소서" 하니, 수 철벽이 대답하되 "군자는 재물을 사랑하기는 하되 취하는데는 도가 있느니라" 하였으니, 법운이 드러내보이지 못했다 하지 말고 흥화가 감히 값을 매겼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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