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설봉록雪峰錄

7. 설봉선사 스물 네 곳의 경치를 노래함 10~17.

쪽빛마루 2016. 7. 15. 13:05

10. 만송관(萬松關)

 

누가 푸른 솔 심었기에 만 그루가 가지런한가

두 줄로 길을 끼고 절 안으로 들어갔네

하늘가 시원한 솔바람 소리 가을이 언제나 그곳에 있고

땅을 덮은 서늘한 그늘 대낮에도 어둑어둑하구나

 

호박(琥珀)같은 기운 떠올라 초록빛 노을되고

황금같은 꽃 떨어져 향긋한 흙에 뒤섞인다

파랗고 파란 그 빛 내가 잡아매어서

아득히 구름 속에 둥지튼 학과 살아보련다.

誰種靑松萬樹齊  兩行夾徑入招提

半空爽籟秋長在  滿地凉陰晝欲迷

琥珀氣浮成翠靄  黃金花落混香泥

吾將攬結蒼蒼色  縹雲伴鶴栖

 

11. 설교로(雪嶠路)

 

먼 산봉우리 까마득히 눈속을 뚫고 솟아

하얀 꽃 엉긴 곳에 가는 길 트였네

높기는 옥섬돌 밟으며 제석궁 올라가듯 하고

험하기는 은하수에 다리 놓아 달궁전에 오르는 듯하여라

 

허공을 걸어가는 선인은 그 몸 밝고 빛나며

험한 길 오르는 병사는 그림자 어스름하네

매화찾아 곧바로 층층 산마루를 올라서

저 밑 평원을 돌아다보면 모두가 한 빛이라네.

遠嶠迢迢透雪中  素華凝處往來通

高如玉砌升瑤闕  峻似銀橋上月宮

仙子步虛身晃朗  征夫躋險影朦朧

尋梅直上層巓去  下顧平原一色同

 

12. 용면방(龍眠方)

 

산세는 잠자는 용과 같아서 그 일대가 비스듬한데

이 몸은 늘 흰구름에 가리웠네

비 내린 뒤 흘리는 땀방울 있어 비늘 갑옷 생겨났고

나무 빽빽이 들어서서 발톱과 이빨 아무도 본 사람 없네

 

어느 때 변화하여 벼락을 만날까

구불구불 뻗은 몸 긴긴 날 연기 노을 토해내네

어느 대(代)에 항복 받을지 알지 못하고

하늘 땅을 두루 다닌 지 그 몇 해나 되었을까.

山似龍眠一帶斜  此身常是白雲遮

兩餘有汗生鱗甲  樹密無人見瓜牙

變化何時逢霹靂  蜿蜓長日吐煙霞

不知何代經降伏  歷盡乾坤幾歲華

 

13. 문수대(文殊臺)

 

만경에 깔린 노을 연기 비단을 쌓아 놓은 듯한데

이곳이 예전에 문수보살 몸을 나투신 대일세

서쪽 극락 좋은 바람 남쪽 바다를 건너와서

중천에서 법우(法雨)를 내려 아래 세계를 적시네

 

아롱진 털 사자는 구름타고 가버리고

금띠를 띤 용왕은 달빛 띠고 돌아오네

천고의 신령한 자취 어디에서 만날까

청량산 바위 옆에 들꽃이 피었구나

煙霞萬頃錦成堆  舊是文殊顯化臺

西極好風南海過  中天法雨下方來

綵毫獅子乘雲去  金佩龍王帶月回

千古靈踪何所見  淸凉石畔野花開

 

14. 고경대(古鏡臺)

 

흠집없는 옥같구나, 고경대여

하늘 땅이 갈라지기 전에 저절로 먼저 열렸지

온 하늘 덮은 비에 먼지 씻기고 맑아져

만 골짜기 구름 걷히자 달빛 찾아오도다

 

금벽의 그림 속에 밝은 문갑 열어보니

달무리 속에 파란 이끼 자랐네

어떻게 하면 푸른 하늘 밖에 날아올라

신령한 광채를 흩어 온 세계를 비추리.

似玉無瑕古鏡臺  乾坤未判自先開

一天雨洗塵埃淨  萬壑雲收月影來

金碧畫中開曉匣  氷蟾暈裡長蒼苔

何由飛上靑霄外  分散神光照九垓

 

15. 금오교(金鼇橋)

 

금자라 땅 위에 나와 하늘로 치솟고자

파란 안개 속에서 긴 개울 걸터탔네

거꾸로 비친 그림자 물따라 흘러가지 않으니

허깨비 같은 그 몸은 누운 용과 같으리

 

은하수에 오작교가 이어진 듯 황홀하기 이를 데 없는데

다시 보니 맑은 물결에 아롱진 무지개 나타난 듯하구나

저 큰 푸른바다 찾아가 봉래섬을 머리에 이지 말고

행인들이 길이 너를 믿어 동서로 건너가게 하여라.

金鼇出地欲騰空  橫駕長溪碧霧中

倒影不隨流水去  幻身應與卧龍同

恍疑銀漢連烏鵲  復訝淸波現彩虹

莫向滄溟戴蓬島  行人永賴度西東

 

16. 나한애(羅漢崖)

 

신승(神僧)께서 높이 숨어 천태산에 계시는데

묻노니 그 언제 바다 건너 오셨소

구름길 옛부터 방광사(方廣寺)로 통해 있고

게다가 절벽바위는 범왕대(梵王臺)와 가깝구나

 

신령한 빛은 한밤중에 밝은 달에 이어지고

성스러운 발자취는 천년을 파란 이끼에 남아 있네

신기한 경개는 늘 청춘이라 늙지 않아서

지금도 온갓 꽃이 피어남을 보는구나.

神僧高隱在天台  借問何時渡海來

雲路舊通方廣寺  石崖况近梵王臺

靈光午夜連明月  聖跡千年寄碧苔

異景靑春常不老  至今猶見百花開

 

17. 제운령(梯雲嶺)

 

옛 고개 높고 높아 파란 하늘 가깝고

만길되는 하늘 사다리 날으는 무지개를 걸터탔네

새 다니는 길에 구름 열리면 산은 층층으로 험하고

솔문으로 드는 길, 걸음마다 트였구나

 

신선모습 언제나 파란 나무 속에 노닐고

나무꾼 노랫소리 저 멀리 파란 연기 속을 건너가네

몇번이나 몸소 동산의 나막신 고쳤던가

앞뒤에 오를 때마다 저녁바람에 휘파람 불었네.

古嶺岧嶤近碧空  天梯萬丈跨飛虹

雲開鳥道層層險  路入松門步步通

仙仗每遊蒼樹裏  樵歌遙度碧煙中

幾回自補東山屐  前後登臨嘯晩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