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설봉록雪峰錄

7. 설봉선사 스물 네 곳의 경치를 노래함 18~24.

쪽빛마루 2016. 7. 16. 12:05

18. 상골봉(象骨峰)

 

큰 코끼리는 원래 힘도 세고 웅대한데

누가 그 뼈를 도려내서 공중에 걸었는가

골수는 메말라 영롱한 바위로 변하였고

빼어난 기운을 내놓음은 조화신공을 따른 것이네

 

그 거대한 몸집은 옛 개울에 잠겼는가

다시는 봄바람에 움직이는 긴 코도 없구나

그런데 어떻게 하룻저녁에 당장 원기가 생겨나

신통한 스님을 태우고 해돋는 동녘땅에 건너왔는가.

大象由來力勢雄  是誰剸骨架空中

髓枯盡變玲瓏石  秀發還從造化功

疑是巨身沈古澗  更無長鼻動春風

何當一夕生元氣  還載神僧過日東

 

19. 마향석(磨香石)

 

영롱한 바위 위는 향을 갈기 좋으니

천지조화 모여서 옛 길 옆에 만들어 놓았네

맑은 기운 바람 따라 흩어지지 아니하고

그 영화 길이길이 안개 속에 펼쳐지네

 

은은한 계설향(雞舌香)은 따사로운 봄하늘에 떠있고

황홀한 용연향(龍涎香) 서늘한 밤기운을 토해내네

아는가, 누가 여기에 손자국 남겼기에

지나는 사람 그 누가 남은 향기 맡지 못하랴.

玲瓏石上好磨香  造化鍾成古道傍

淸氣不隨風散盡  英華長與霧悠揚

依稀雞舌浮春暖  恍惚龍涎吐夜凉

知是何人留手澤  經過誰不嗅餘香

 

20. 방생지(放生池)

 

가을에는 서늘하고 봄에는 따스한데

방생지 위에는 많은 고기 방생하네

멋대로 날고 뛰며 아무런 얽매임 없고

마음대로 왔다갔다 그물을 벗어났네

 

연잎 덮개 속에서 법화(法化)의 비를 떠받고

마름꽃 거울 속에 좋은 물결 일렁이네

맑고 얕은 못 속을 굽어보면 하늘 그림자 비치고

삼라만상은 밝고 밝게 서로를 스치네.

秋氣淸凉春氣和  放生池上放生多

恣飛恣躍無拘繫  隨去隨來脫網羅

荷葉蓋中擎化雨  菱花鏡裏漾仁波

俯臨淸淺觀天影  萬像熙熙共蕩摩

 

21. 잠월지(蘸月池)

 

몇 고랑 밭넓이의 잔잔하고 편편한 못

물결 하나 일지 않고 밤빛이 차갑구나

구슬 갖고 놀던 신녀(神女) 허공 타고 가버리고

거울 앞의 선녀는 그림자 거꾸로 비치는구나

 

하얗고 파란 물결 길이 고금에 뒤섞이고

푸른 하늘 아래위로 가깝게 비쳤네

수정궁에는 티끌 하나 끼지 않고

때때로 바다 밑에 도사린 교룡이 보이네.

湛湛平池數畝寬  一波不動夜光寒

弄珠神女乘空去  臨境嫦娥倒影看

白碧古今長混合  靑天上下映團欒

水晶宮殿無纖翳  時見蛟龍海底蟠

 

22. 망주정(望州亭)

 

석양은 서산에 지고 물은 동쪽으로 흐르는데

높은 정자에 홀로 올라 조주 땅 바라본다

파란 하늘에 구름 일고 학 그림자 아득한데

봉래섬에 비 그치자 자라머리 나타나네

 

지난날 차 마시던 사람, 간 곳이 어디인지 아는가

기림(祇林)나무 꽃잎 지고 몇 가을 지났던가

열두개의 난간에 차례차례 기대며 읊조리니

수레같은 둥근 달 창주(滄州)에 떠 있구나.

夕陽西下水東流  獨上高亭望趙州

雲起碧空迷鶴影  雨收蓬島露鼇頭

嘗茶人往知何處  祇樹華殘度幾秋

十二欄干吟倚遍  一輪明月在滄洲

 

23. 탁석천(卓錫泉)

 

설봉산 봉우리 밑 푸른 바위 앞에는

석장 꽂아 맥을 튼 우물 하나 있는데

돌 속에서 나오는 물맛 달기가 그만이니

그 물의 향기는 용의 침과 섞인 듯하네

 

차고 푸른 이끼는 신령한 자취 뒤덮고

솔밭 대밭 맑게 섞여서 밤새 거문고소리 메아리치네

쉬지 않는 개울의 묘한 기틀은 머물지 않고

끝내는 큰 바다로 돌아가 푸른 하늘을 적시리라.

雪峰峰下翠岩前  卓錫開通一派泉

甘味絶勝和石髓  流香應是帶龍涎

碧寒苔蘚封靈跡  淸雜松篁響夜絃

溪轉機玄留不住  終歸大海浸蒼天

 

24. 응조천(應潮泉)

 

파란 연못 신비한 우물이 바다의 조수와 때를 맞추어

밀물이 밀려오면 샘물도 불어나고 썰물 밀려가면 샘물도 줄어드네

숨 한번 내쉬고 들이쉼에 하늘 땅을 통했으니

얕아졌다 가득 찼다 하면서 아침 저녁따라 변하네

 

그 밑엔 물신선이 깊숙이 살고 있기에

맑은 기운 떠올라 뜨겁고 시끄러운 이 곳에 닿으니

깊은 굴 속에 잠든 용을 놀라게 할까봐

옥피리 불어달라고 감히 물어보지 못하겠네.

碧沼靈泉應海潮  潮來泉長去還消

一呼一吸通天地  乍淺乍盈隨旦宵

下有水仙居溟漠  上浮淸氣逼炎囂

恐驚深窟蛟龍睡  不敢問吹碧玉簫

 

천순 원년(天順元年 : 1457) 정축, 승록사(僧錄司) 우가 각의(右街覺義)이며 전 설봉사 76대 주지인 설봉의 법손, 사문 월암 원담(月菴源潭)이 삼가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