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장 어버이에게 효도하는 행[孝親之行]
어버이에게 효도하는 행[孝親之行]
1. 수승한 우란분재 법회[蘭盆勝會]
부처님 당시 대목건련(大目建連)은 지극한 효도로 어머니를 섬기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출가하여 부지런히 도를 닦아 6신통(六神通)을 체득하였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아귀(餓鬼) 가운데 태어난 것을 보고 밥을 갖고 가서 드렸으나, 음식이 맹렬한 불로 변해 버렸다. 목련이 통곡하며 이 사실을 부처님께 고하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어머니는 죄가 지중(至重)하여 너 한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 해볼 수가 없다. 반드시 여러 스님들의 위신력을 빌어 7월15일 부처님의 환희일(歡喜日)과 스님들의 자자일(自恣日)에 맞추어 어머니를 위해 우란분재(盂蘭盆齋)를 베풀고 부처님과 스님께 공양해야만 비로소 아귀의 고통에서 구제할 수 있으리라."
목련(目連)이 부처님 가르침대로 재를 베풀자 그의 어머니는 이 날로 아귀의 고통에서 벗어났다. 또한 천도해 준 덕분에 드디어는 천상에까지 태어나게 되었으니 이로 인해 수승한 우란분재 법회가 만세에 유통하게 되었던 것이다.
찬탄하노라
살아서 봉양하고
죽어서 장례 지내는 것은
작은 효도이며
살아서 기쁘게 해드리고
죽어서 그 이름을 빛나게 하는 것은
큰 효도이다.
살아서 올바른 믿음으로 인도하고
죽어서 그 영혼을 천도함은
큰 효도 가운데 가장 큰 효도이니
목건련의 효도가 이러하더라.
2. 친히 어머니를 직접 공양하다[母必親供]
제(齊)나라 도기(道紀)스님은 「성실론(成實論)」을 익히더니, 「금장론(金藏論)」 7권을 짓고 업성(鄴城) 동쪽 근교에서 강연하였다. 강연을 하러 갈 때면 그의 어머니와 경전 · 불상 등을 업고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어머니를 직접 공양하는 자는 그 복이 10지(十地) 자리에 오른 보살과 같다."
그리고는 옷 입히고 음식을 해드리고 대소변 보는 것을 몸소 치뤄내면서 다른 사람을 번거롭게 하지 않았다. 누가 그를 도와주려는 자가 있으면 그 때마다 거절하면서,
"나의 어머니이지 그대의 어머니는 아니다. 어머니 몸의 더러움은 내몸의 더러움과 같은 것이다. 몸이 있으면 반드시 괴롭다. 무엇 때문에 다른 사람을 수고롭게 하겠는가?"
라고 말하였다. 사부대중들 중에 이 말을 듣고 감화를 받은 이가 많았다.
3. 모친상에 식음을 폐하다[居喪不食]
양(梁)나라 법운(法雲 :467~529)스님은 양선(陽羨) 사람으로 7살에 출가하여 장엄사(莊嚴寺) 보량(寶亮)스님의 제자가 되었다. 매우 영특하여 묘음사(妙音寺)에서 「법화경(法華經), 「유마경(維摩經)」을 강설하였는데 학인들이 바다처럼 모여들었다. 천성이 진실하고 효성스러워 부모님의 안색을 살피며 뜻에 맞게 봉양하였다. 어머니 상(喪)을 당하자 수척한 모습으로 지나치게 예(禮)를 갖추며 여러 날을 먹지 않자, 승민(僧旻)스님이 그에게 말하였다.
"성인께서 예법을 제정하시자 현인은 정도를 낮추어서 나아갔고, 어리석은 사람은 애써 따라갔다. 그리고 수척해져도 생명을 잃게까지 하지는 않았다 하니 여기까지는 유종(儒宗)에서도 하는 말이다. 더구나 우리에게는 부처님의 지극한 말씀이 있지 않은가? 낳아 준 은혜에 보답하려 한다면 가까이는 때때로 거동을 봉양하고, 멀리는 보리(菩提)를 계발하도록 마음[神識]을 인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속히 원대한 이치를 생각하여 생사를 건너는 나루터를 이루어야 할 것인데, 감정 가는 대로 하여 자잘하고 사소[細近]한 것과 같아져서야 되겠는가?"
법운스님은 그제서야 슬픔을 끊고 약간의 죽을 내어오게 하였다.
찬탄하노라
증자(曾子)는 모친상에 7일 동안
물 한방울 입에 넣지 않았다 하나
법운스님의 경우를 살펴보면
증자인들 이보다 더할소냐.
세속에서는 '불교는 어버이를 버린다' 하지만
그것이 될 법이나 한 얘긴가.
4. 소리 없이 울며 슬픔으로 수척해지다[泣血哀毁]
수(隋)나라 지취(智聚 :538~609) 스님은 소주(蘇州) 지방 호구산(虎丘山) 동산사(東山寺)에 살았다. 지덕(至德) 3년(585)에 어머니 상을 당하였는데 스님은 소리 없이 울고 슬퍼하느라고 수척해져서 거의 죽을 지경까지 되었다. 후일 스님은 동산정사(東山精舍)에 머물면서 쉬지 않고 훌륭하게 법을 설하여 법륜(法輪)을 항상 굴리었다.
5. 어머니를 업고 강론을 듣다[荷擔聽學]
수(隋)나라 경탈(敬脫 :555~617)스님은 급군(汲郡) 사람으로 어려서 출가하였는데, 효성스럽고 청정하며 강직하다고 소문이났었다. 강의를 들으러 갈 때면 스님은 항상 짐을 지고 다녔는데 한 어깨에는 어머니를, 또 한 어깨에는 경전. 종이. 붓을 꾸렸다. 공양시간이 되면 어머니를 나무 아래 앉혀놓고 마을로 들어가 걸식하였다.
6.우물을 파서 아버지에게 보답하다[鑿井報父]
당(唐)나라 혜빈(慧斌)스님은 연주(兗州)사람으로 늙으신 아버지가 조정에 계시므로 효도하고 공경할 길이 없었다. 이리하여 문수(汶水) 남쪽 여러 갈래 길이 교차하는 곳에 의정(義井) 이라는 우물 하나를 만들어 부친의 은혜에 보답하고, 비를 세워 명(銘)을 새겼는데 거기에 이런 귀절이 있다.
저무는 황혼에 근심은 큰데
자식을 볼 기약 없어라.
인생 백 년이 몇 날이나 되던가.
이를 마주하고 길이 슬퍼하노라.
7. 탑에 예배하여 어머니를 구제하다[禮塔救母]
당(唐)나라 자린(子鄰)스님의 아버지는 범씨(范氏)이고 어머니는 왕씨(王氏)였는데 3보(三寶)를 믿지 않았다. 자린스님은 동도(東都)로 도망하여 광수사(廣受寺) 경수율사(慶受律師)에게 출가하였다. 그 뒤 홀연히 어버이가 생각나서 문안을 드리러 갔더니 아버지는 실명(失明)하여 앞을 못보고 어머니는 작고한 지 3년이나 지났었다. 스님은 곧장 악묘(岳廟)에 나아가 좌구(坐具)를 펴고 「법화경(法華經)」을 외우며 악제(岳帝)를 뵙고 어머니가 태어나신 곳을 알아보리라 맹세하였더니, 그날밤 악제가 불러 이렇게 말하였다.
"너의 어머니는 지옥에 갇혀 갖은 괴로움을 받고 있다."
스님이 슬피 울면서 사면해 주기를 청하자 악제가 말하였다.
"무산(鄮山)으로 가서 아육왕탑(阿育王塔)에 예배하면 구제될 수 있으리라."
스님은 즉시 탑에 나아가 슬피 울며 예배하였다. 예배가 4만(四萬) 번에 이르자 어디선가 '자린아'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허공을 바라보자 어머니가 나타나
"너의 힘으로 도리천(忉利天)에 태어나게 되었다."
하고 고마와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홀연히 사라졌다.
찬탄하노라
목련은 부처님 가르침대로
스님들께 공양하더니
자린은 악제신(岳帝神)의 가르침대로 탑에 예배하였네.
지극한 효도는 신명(神明)에 통한다 하니
어찌 믿지 않겠는가.
8. 도를 깨달아 아버지에게 보답하다[悟道報父]
당(唐)나라 사비(師備)스님의 성은 사씨(謝氏 :835~908)였다. 그의 아버지가 어업으로 먹고 살다가 그만 익사하자, 이 때부터 출가하여 아버지에게 보답하려 하였다. 짚신에 베누더기를 입고 겨우 연명할 정도로 먹으면서 설봉 의존(雪峯義存)스님과 도반이 되었다. 설봉스님은 그런 고행을 한다 해서 그를 '두타(頭陀)'라고 불렀다.
하루는 걸망을 지고 선지식을 두루 참방하리라 마음먹고 산을 나서다가 갑자기 발을 다쳐 피가 흐르자 거기서 확연히 깨달았다. 그리하여 산을 나가지 않고 설봉스님에게서 심요(心要)를 결단하였다. 설봉스님은 언젠가 그를 두고 이런 말을 하였다.
"사비스님은 두타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 후 홀연히 꿈에 아버지가 나타나,
"자식이 출가하여 심지(心地)를 밝힌 덕분에 천상에 태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와 알려주는 것이다."
라고 고마와하였다.
9. 정강이 살을 베어 주고 출가하다[刲股出家]
당(唐)나라 감종(鑑宗 :?~866)스님은 호주(湖州) 장성(長城) 사람으로 성은 전씨(錢氏)였는데 아버지인 성(晟)이 병이들자 정강이 살을 잘라 다른 고기라고 속여 공양하였다. 그러자 아버지의 병이 나았다. 그 후 출가를 구하더니, 염관 오종(鹽官悟宗) 스님을 배알하였는데, 대중을 따라 참례하고 법문을 청하는 자리에서 마음의 근원을 홀연히 깨달았다. 함통(咸通) 연간(860~873)에 천목산(天目山) 동쪽 봉우리인 경산(經山)에 머물렀는데, 경산 제2조라(徑山第2祖)라 불리웠다.
10. 왕골로 신을 삼아 어머니를 공양하다[織蒲供母]
당(唐)나라 목주(睦州) 진존숙(陳尊宿) 의 휘(諱)는 도명(道明)이다. 처음 사방을 행각하다가 황벽(黃蘗)스님에게서 종지(宗旨)를 깨닫고 관음원(觀音院)에 머물렀는데, 대중이 항상 100여 명이나 되었다. 그 후 대중을 버리고 개원사(開元寺) 방으로 들어가 왕골로 신을 만들어 길가에서 보시하며, 신을 팔아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님을 (진포혜스님(陳蒲鞋: 짚신스님)이라고 불렀다.
11. 정성이 아버지의 뼈를 감동시키다[誠感父骨]
후주(後周) 도비(道丕)스님은 장안(長安) 귀주리(貴胄里) 사람이며 당나라의 종실(宗室)이기도 하다. 7살에 출가하였으며, 19살에 장안이 점령당하고 임금이 낙양(洛陽)으로 피신하는 난리를 만났다. 이에 어머니를 업고 화산(華山)으로 들어가 바위굴에 편안히 모셨다. 그 때 곡식값이 폭등하고 귀하게 되어 먹을 것이 없게 되자 자신은 음식을 먹지 않고 걸식한 것은 어머니에게만 공양하였다. 그러면서도 어머니가 밥을 먹었느냐고 물으면 어머니 마음을 상할까 항상 먹었다고 대답하였다. 하루는 어머니가 말하기를,
"너의 아버지는 곽산(藿山)에서 전몰(戰沒)하여 유골이 서리와 이슬에 드러나 있다. 거두어 모시고 와 장사지낼 수 있겠느냐?"
고 하자, 스님은 곧 길을 떠났다. 드디어 곽산에 이르러 수많은 백골(白骨)을 모아서 밤낮으로 경전을 지송(持誦)하면서 이렇게 빌었다.
"옛사람은 정성으로 감동시켜 핏방울로 뼈를 가리어 알아보았다 합니다. 원하옵건대 뭇 뼈 가운데서 움직이는 것이 있어서 아버지의 유해인 줄로 알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는 일심으로 주의를 기울이면서 눈을 경솔하게 떼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해골 하나가 뼈무더기에서 튀어 나와 한참이나 흔들거렸다. 스님은 팔짝팔짝 뛰는 유골을 안고 돌아와 어머니를 뵈었다. 그날밤 어머니는 부군이 되돌아오는 꿈을 꾸었는데, 다음날 새벽 유골이 이르른 것이다. 사람들은 이를 지극한 효성에 감동한 결과라 하였다. 그 후 스님은 임금의 요청에 응하여 도를 강론하였는데 상석에 앉는 경우가 많았으며, 조정에서나 일반 대중이 모두 귀의하고 존중하였다.
찬탄하노라.
음식를 끊어 배고픈 어머니께 공양하고
경전을 읽어 아버지의 유골을 찾았으니
대효(大孝)가 죽은 이와 산 이에 함께 하였다 할 수 있으니
지극한 효행은 고금을 초월한 것이라 할 만하다.
아~~~아, 기특한 일이다.
12. 염불하여 어머니를 제도하다[念佛度母]
송[越宋]나라 종색(宗頣)스님은 양양(襄陽) 사람으로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인 진씨(陳氏)가 외삼촌댁에 데리고 가서 길렀다. 어려서는 유업(儒業)을 익혔고, 29세에 장노 수(長盧秀)스님에게 예배하고 출가하였다.
현묘한 이치를 참구하여 통달하자, 어머니를 방장실(方丈室)의 동쪽 방으로 맞이하여 머리 깎기를 권하고 맛있는 음식 이외에는 염불을 힘써 정진하게 하였다. 그 뒤 병 없이 임종하였는데, 효도를 권하는 글을 지어 세상에 유포시켰으며 호를 자각(慈覺)선사라 했다.
찬탄하노라.
종색스님은 정토(淨土)를 독실히 믿어
자신의 이익뿐만 아니라
어머니까지 극락왕생하는 과보를 얻게 하였으니
어머니를 제도하여 천상에 나게 한 것보다
훨씬 훌륭하다 하겠다,
사문으로서 어버이께 보답코자 한다면
이를 몰라서는 안되리라.
총 평
세상 사람들은 '불교에서는 부모를 모른다'고 비판하나 불교에서의 효행은 오히려 세상 사람들보다 지극하니, 전기에 실린 내용이 분명한 증거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지금은 뱀이나 전갈처럼 승려를 질시하는 자가 있으니 이는 스님들의 죄이다. 가히 통탄할 일이니, 그 죄에는 3가지가 있다.
첫째, 시방(十方)의 공양을 편안하게 누리면서 어버이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고, 둘째, 배나 수레에 도도하게 앉아서 어버이에게 마치 종처럼 끌게 하는 것이며, 세째, 애정을 끊고 출가했으면서 따로 다른 남녀에게 예배를 올리고 부모로 삼는 일이다. 바라건대, 새상 사람 들이여, 이 세 부류의 못난 중을 가지고 다른 스님들까지 비방하지는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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