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임간록林間錄

95. 생멸없는 자리에서 오고감을 보이심/ 엄(儼)스님

쪽빛마루 2015. 1. 12. 09:31

95. 생멸없는 자리에서 오고감을 보이심/ 엄(儼)스님

 

 남안암(南安巖)의 엄(儼)스님은 정광불(定光佛)의 응신(應身)이라 세상에 전해오고 있다. 남다른 일이 매우 많았고 스스로 전기를 남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전기에는 스님이 법을 얻은 은사 스님의 이름이 실려 있지 않고 오직 서봉(西峯)이라 쓰여 있을 뿐인데 서봉은 여릉(廬陵)에 있다.

 북송 진종(眞宗) 때에 운활(雲豁)스님이란 분이 있었는데 봉선 도심(奉先道深)스님의 훌륭한 제자였다. 봉선 도심스님은 운문(雲門)스님을 친견하였는데 당시 훌륭한 고승으로는 스님을 능가할 사람이 없었으며, 오직 청량 지명(淸涼智明)스님만이 그와 이름을 나란히 할 수 있어서 심 · 명(深明) 두 스님이라 불리웠다.

 엄(儼)스님은 평소 게를 지어 설법을 많이 하였는데, 끝부분에는 반드시 ‘증이지중[贈以之中]’네 글자를 썼으나 아무도 그 뜻을 알지 못하였다. 임종하면서 대중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꼭 알아야 한다. 현묘한 불성은 확 트여 본래 생멸(生滅)이 없다. 가고 옴을 보일 뿐이니, 여기에 무슨 의문이 있겠느냐? 나는 오늘 태어나는데 지금이 바로 그 시각이다.”

 말을 마치고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편히 누운 채 열반하였다 한다.

 나는 다시금 음미해 본다.

 “스님이 막 입적할 때 ‘나는 오늘 태어나는데 지금이 바로 그 시각이다’고 한 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