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오가정종찬五家正宗贊

11. 암두 전할(巖頭前奯)선사 / 828~887

쪽빛마루 2015. 2. 7. 07:54

11. 암두 전할(巖頭前奯)선사

      / 828~887

 

 스님의 법명은 전할(全奯)이다. 덕산 선감(德山宣鑑)스님의 법제자로 천주(泉州)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가씨(柯氏)다.

 어느 날 덕산스님을 찾아뵈었는데 문지방을 넘어서면서 물었다.

 “이것이 범인입니까 성인입니까?”

 덕산스님이 악! 하자 스님은 절을 올렸다. 한 스님이 이 이야기를 동산(洞山 : 807~869)스님에게 전하니, “만일 전할스님이 아니였다면 알아듣기란 대단히 어려웠을 것이다”고 하였는데, 스님은 이 말을 전해듣고 말하였다.

 “동산노인이 좋고 나쁜 것도 모르고 내 이름을 잘못 들먹였다. 나는 당시 한쪽 손은 위로, 한쪽 손은 아래로 내렸었다.”

 

 하루는 설봉, 흠산(欽山)스님과 함께 이야기를 하는데 그릇에 물이 담겨 있는 것을 보고서 흠산스님은 “물이 맑으니 달이 나타나는 구나”하였고, 설봉스님은 “물이 맑으니 달이 나타나지 않는구나”하였다. 스님은 물그릇을 걷어차고 나가버렸다.

 

 스님이 설봉스님과 함께 덕산스님의 회하를 떠나려 할 때 덕산스님이 물었다.

 “어디로 가려는가?”

 “잠시 스님의 회하를 떠나려 합니다.”

 “그대는 뒷날 무엇을 하려는가?”

 “스님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무슨 근거로 이런 말을 하는가?”

 “스님께서는 듣지 못하셨습니까? ‘지혜가 스승과 같으면 그 덕은 스승의 반으로 줄어드니, 지혜가 스승보다 더 나아가 비로소 법을 전수받을 수 있다’ 하였습니다.”

 “그렇지 그렇지! 잘 간직하게.”

 

 스님은 악주(鄂州) 암두산에 있다가 폐불사태(廢佛沙汰)를 만나 동정호가에서 뱃사공이 되었다. 양 언덕에 판자 하나씩 걸어놓고 강을 건너려는 사람이 그 판자를 한 번 치면 “누구냐”고 묻고, “저쪽으로 건너가려 하오”라고 대답하면 스님은 춤추듯 노를 저어 손님을 맞이하였다. 하루는 한 노파가 어린아이를 안고서 물었다.

 “키를 들어올리고 춤추듯 노젓는 일이야 물을 것 없고, 이 노파의 손에 안긴 어린아이는 어디에서 왔는가?”

 스님은 노로 뱃머리를 쳤다. 이에 노파는 말하였다.

 “이 노파가 일곱 아이를 낳았는데 여섯은 좋은 도반[知音]을 만나지 못하였소. 그리고 이 아이마저 만나지 못하는구려.”

 그리고는 아이를 물속에 던져버렸다.

 스님이 뒤에 동정호가의 와룡산(臥龍山)에 암자를 마련하자 수많은 문도가 모여들었다.

 한 스님이 물었다.

 “스승 없이도 몸을 벗어나는 방법이 있습니까?”

 “그 소리를 내기 전에 해묵은 솜옷이 썩었느니라.”

 

 상당하여 말하였다.

 “내 이제껏 「열반경」을 탐구해 온 지 7, 8년 되는데, 그 가운데 한두 마디는 납승의 설법과 비슷한 곳이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말하였다.

 “그만두자, 그만둬.”

 이때 한 스님이 앞으로 나와 절을 올리고 청하였다.

 “스님께서는 대중을 위하여 설법해 주십시오.”

 스님은 마침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가르침[敎意]은 ∴자의 세 점과 같다. ‘첫번째는 동쪽에 한 점을 찍으니 모든 보살의 눈에다 찍어서 개안케 한 것이며, 두 번째는 서쪽에 한 점을 찍으니, 모든 보살의 명근(命根)에 점찍은 것이며, 세 번째는 위에다가 한 점을 찍으니, 모든 보살의 정수리를 열어 줌이다’하니, 이는 「열반경」의 첫마디 법문이다. ‘이 가르침은 마치 마혜수라(摩醯首羅)의 얼굴에 있는 한 쪽 눈과 같다’하니 이는 두 번째 마디 법문이다. ‘이 가르침은 독을 바른 북[塗毒鼓]과 같아서 한 번 치면 멀리든 가까이든 들은 모든 이가 목숨을 잃는다’하니 이는 셋째 마디 법문이다.”

 이때 소엄(小嚴)상좌가 물었다.

 “무엇이 독을 바른 북입니까?”

 스님은 두 손으로 무릎을 어루만지고 몸을 굽히면서 “한신(韓信 : 漢초기 명신)이 조정에 들어가는 것이다”하였는데 소엄상좌는 대꾸하지 못하였다.

 

 나산(羅山)스님이 석상(石霜 : 807~888)스님을 찾아뵙고 물었다.

 “가거나 머물거나 마음이 편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합니까?”

 “모든 것을 물리쳐야 한다.”

 나산스님은 그 말에 만족하지 않고 마침내 스님을 찾아뵙고 똑같이 물었다.

 “가든 머물든 상관하여 무엇하려는가?”

 그러자 나산스님은 마침내 그 말에 승복하였다.

 어느 날 다시 물었다.

 “스님께서는 30년 전 동산에 계실 때 동산스님을 인정하지 않았던 사람이 아닙니까?”

 “그렇다.”

 “스님께서는 덕산의 법을 이었으면서도 덕산스님으 인정하지 않았던 사람이 아닙니까?”

 “그렇다.”

 “스님께서 덕산스님을 인정하지 않는 일이야 묻지 않겠지만 동산스님 같은 분은 무엇이 부족하다 하겠습니까?”

 스님은 한참 동안 잠자코 있다가 말하였다.

 “동산스님은 부처는 좋은 부처이지만 광채가 안 난다.”

 나산스님은 절을 올렸다.

 스님이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에서 왔는가?”

 “서경(西京)에서 왔습니다.”

 “황소(黃巢)가 지나간 뒤 칼이나 주웠는가?”

 “주웠습니다.”

 스님은 그에게 다가서서 목을 쭈욱 빼고는 “윽!”하고 소리치자 그가 “스님의 머리가 떨어졌습니다”하니 스님은 껄껄대며 크게 웃었다.

 그 스님이 뒤에 설봉스님을 찾아가자 설봉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암두스님 회중에서 왔습니다.”

 “암두가 무슨 말을 하던고?”

 그가 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자 설봉스님은 30대를 쳐서 내쫓아버렸다.

 

 한 스님이 물었다.

 “도란 무엇입니까?”

 “떨어진 짚신짝을 호숫가에 던져버려라.”

 

 한 스님이 물었다.

 “오래된 배에 돛대를 올리지 않았을 때는 어떻습니까?”

 “작은 고기가 큰 고기를 삼킨다.”

 “돛대를 올린 뒤에는 어떻습니까?”

 “뒷 뜰의 당나귀가 풀을 뜯는다.”

 서암(瑞巖)스님이 물었다.

 “본래 항상한 이치란 무엇입니까?”

 “움직임이다.”

 “움직일 때는 어떻습니까?”

 “본래 항상한 이치가 아니다.”

 서암스님이 생각에 잠기자 스님이 말하였다.

 “수긍하면 근진(根塵)을 벗어나지 못하고, 수긍하지 않으면 영원히 생사에 빠지게 된다.”

 서암스님은 이 말끝에 활짝 깨쳤다. 그 뒤로 스님께서는 누구든 “부처가 무엇이냐” “법이 무엇이냐” “선이 무엇이냐” “도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의레껏 “허- ”하는 한숨소리만을 낼 뿐이었다.

 

 하루는 대중에게 “이 늙은이가 떠날 때에는 크게 한번 소리지르고 떠나리라”는 말을 남겼다. 어느 날 도적무리가 들이닥쳐 내놓을 것이 없느냐고 다그치다가 마침내 스님을 칼로 찔렀다. 스님은 태연자약하게 한번 크게 소리친 뒤 세상을 떠났는데 그 소리가 수십리 밖까지도 들렸다 한다. 당나라 광계 3년(光啓 3 : 887) 4월 8일이었다.

 

 찬하노라.

 

지혜가 스승보다도 나은 줄을

그 누가 믿겠는가

 

‘할’소리 들으나 그 뜻을 알기 어렵고

허- 하는 소리에는 전혀 자취 없어라

 

고개를 가로젓기 30여 년에

동산스님에게 광이 안난다 하고

한번 두 번 울리는 도독고 소리에

한신이 조정에 임하였음을 듣는다

 

동정 호반에 춤추듯 노를 젓다가

냄새나는 노파 끌어들여 어린아이 던져버리고

오산의 주막에서 폭설로 길이 막혀

마귀같은 중놈이라 꾸짖어도 깊은 잠에 떨어졌네*

 

소리가 있기 전에 해묵은 솜옷이 썩어졌다 하여

주도면밀하게 기연을 놀리고

뒤뜰에 당나귀가 풀을 뜯는다 하니

이게 무슨 종지인가

 

칼을 주운 뒤에 칼날 위에다

이 스님 머리를 잘못 붙였고

종 치기 전에 바리때 들고 돌아와

은밀히 스승에게 그 뜻을 전하였네

 

대도의 실마리가 무엇이냐 물으면

화급히 짚신짝을 휙 던져버리고

도반과 어울려 이야기 주고받다가

아깝게도 물그릇을 걷어차버렸네

 

가거나 머물거나 편치 않을 때 없다고

나산 스님에게 일러주었고

근진을 벗지 못하면 본래 항상한 이치가 아니라 하여

서암스님을 인정하였네

 

평생을 말끔이 벗어나

생사를 숲속의 놀이로 보고

마지막에 지으신 일할대성은

수십리 밖에까지 들렸다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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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봉 진각 선사 : 뒤편의 12. 설봉진각선사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