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설봉 진각(雪峯眞覺)선사
/ 822~908
스님의 법명은 의존(義存)이며, 천주 증씨(泉州曾氏) 자손이다. 오령(五嶺)을 나와 맨처음 염관 제안(鹽官齊安)스님을 뵈었고, 그 후 세 차례나 투자 대동(投子大同)스님께 갔으며 아홉 차례나 동산스님을 찾아뵈었으나 기연이 맞지 않았다. 그 뒤 덕산스님을 찾아뵙고 마침내 말끝에 깨쳤다.
스님이 동산스님을 하직하니 동산스님이 물었다.
“어디로 가려는가?”
“오령으로 돌아가렵니다.”
“이곳에 올 때는 어느 길로 왔는가?”
“비원령(飛猿嶺)을 넘어왔습니다.”
“지금은 어느 길로 가려는가.”
“비원령으로 넘어가렵니다.”
“여기 비원령으로 넘어가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그대는 아는가?”
“모르겠습니다.”
“왜 모르느냐?”
“그는 얼굴이 없습니다.”
“모른다고 하면서 어떻게 그가 얼굴이 없는 줄을 아는가?”
스님은 대답하지 못하였다.
스님은 암두스님과 함께 예주(灃州) 오산(鰲山)의 객점까지 갔을 때 폭설로 길이 막혔다. 이에 암두스님은 잠만 잤고 스님은 계속 좌선을 하였는데, 하루는 암두스님을 불러 깨웠다.
“사형! 일어나시오.”
“무슨 일이오?”
“금생엔 다 틀린 모양이군! 문수(文邃 : 欽山)라는 자와 함께 행각할 때는 가는 곳마다 그놈 때문에 귀찮은 일만 생기더니, 이제 사형은 무작정 잠만자니...”
그러자 암두스님이 악! 하고 고함을 치고서 말을 이었다.
“먹고 자고 하니 매일 하는 일이 시골뜨기처럼 보이겠지만 뒷날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을 홀릴 것이오.”
그 말에 스님은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이 속이 답답합니다.”
“나는 그대가 뒷날 고봉정상에 토굴을 마련하고서 부처를 꾸짖고 선사를 욕하리라고 믿어 왔었는데 오히려 이런 말을 하다니...”
“저는 참으로 답답합니다.”
“정말 그렇다면 그대의 견처를 하나하나 점검해 보지. 옳은 견처는 증명해 주고 옳지 않은 견처는 잘라 주겠네.”
“내 처음 염관스님에게 갔을 때 색공(色空)의 이치를 거론하시는 말씀을 듣고 들어갈 곳을 찾았습니다.”
“앞으로 30년 동안 절대로 그 말을 들먹거리지 말게나.”
“그 다음 동산스님이 개울을 지나다가 깨치고 지은 오도송을 듣고서 느낀 바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자기 자신도 구제할 수 없다네.”
“제가 덕산스님께 ‘옛부터 내려온 종승(宗乘)의 일에 저도 자격이 있겠습니까’라고 물었더니 덕산스님은 몽둥이로 한 차례 친 후 ‘뭐라고?!’ 하였는데, 저는 그 말에 마치 물통 밑바닥이 빠진 듯 하였습니다.”
그러자 암두스님은 무섭게 악! 하고 고함친 뒤 말하였다.
“옛사람의 말을 듣지도 못하였는가. ‘문으로 들어오는 것은 우리 가문의 보배가 아니다’ 하신 말씀을.”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뒷날 큰 가르침을 널리 펼치려 한다면 반드시 하나하나 자기 가슴속에서 흘러나오도록 해야 한다. 그럴 때 나와 함께 하늘과 온 누리를 뒤덮을 수 있을 것이오.”
스님은 이 말에 크게 깨치고 연이어 큰소리로 외쳤다.
“사형! 오늘에야 비로소 이 오산에서 도를 이루었습니다.”
스님이 여러 곳을 돌아다닐 때 오석 영관(烏石靈觀)스님을 찾아 뵈었는데 문을 두드리자마자 말하였다.
“누구시오?”
“봉황의 새끼요.”
“무슨 일로 왔는가?”
“늙은 영관을 잡아먹으러 왔소.”
영관스님이 문을 열고 나와 스님을 움켜잡고 “말해라, 말해”하니 스님이 머뭇거리는 차에 영관스님은 스님을 밀쳐버리고 문을 닫았다. 스님이 뒷날 주지가 된 후 대중에게 말하였다.
“내가 당시 영관 노스님의 문에 들어갔더라면 술찌끼나 핥아먹는 너희들이 어느 곳에서 도를 더듬어보겠는가?”
상당하여 말하였다.
“남산에 별비사(鼈鼻蛇)라는 독사 한 마리가 있으니, 너희들은 조심조심 다녀라.”
그러자 장경 혜릉(長慶慧稜 : 854~932)스님이 앞으로 나서며 말하였다.
“오늘 이 법당 안에도 몸을 잃고 목숨을 잃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때 운문(雲門)스님이 주장자를 그 얼굴에 던지자 혜릉스님은 겁에 질린 듯한 시늉을 했다.
한 스님이 이 일을 현사 사비(玄沙師備 : 835~908)스님에게 말하였더니 현사스님이 말하였다.
“이런 일은 혜릉사형이라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나라면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자 그 스님이 다시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무엇하려고 굳이 남산을 들먹이겠느냐.”
상당하여 말하였다.
“온 누리를 움켜쥐면 좁쌀만한데 너희 앞에 던지노니, 캄캄하여 알 수 없거든 북을 쳐서 운력이나 하거라.”
현사스님이 하루는 스님에게 말하였다.
“저도 이젠 대용(大用)을 놀릴 수 있는데 스님께서는 어떻습니까?”
스님은 나무 공 세 개를 동시에 굴려 보내니 현사스님은 토끼로 현비(懸碑 : 절에 걷어두는 게시판)를 쪼개는 시늉을 하였다.
스님께서 말하였다.
“그대가 몸소 영산회상에 있어야만이 그렇게 될 수 있다.”
“그렇습니다. 자기 일입니다.”
민(閩) 땅 장수[帥]가 은으로 만든 교자상을 시주하니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대왕의 굉장한 공양을 받았으니 무엇으로 보답하시렵니까?”
스님은 양 손바닥으로 땅을 짚으면서 말하였다.
“나를 살살 때려다오.”
스님은 상골암(象骨巖)에서 학인을 가르쳤는데 뒷날 송산(松山)에 절을 지어 대중을 안주시키려 하였다. 그리하여 그 곳 암자터를 빌려달라 하였지만 비구니는 허락하지 않았다. 이 일로 그 비구니와 함께 좌선을 하면서 7일 안에 정(定)에서 나오는 사람이 옮기는 것으로 약속하고 입정(入定)하였는데, 비구니가 엿새 되던 날 눈을 뜨자 스님은 마침내 그 터를 빼앗아 절을 지었다. 그리고는 절 방앗간에 패를 달았다.
“산 앞에 하루종일 이리와 범이 없고 방아 밑엔 일년내내 참새자취 끊어지라.”
그 후 지금까지도 범이나 참새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한다.
찬하노라.
얻을 땐 고생고생 하더니만
쓸 때는 별 수 없구려
비원령 들어갈제 그 한 사람 몰랐었고
독 끓는 마을에 태어나니 작은 허물이야 얻을 수 없지
달궈진 벽돌을 바닥까지 얼어 붙은 얼음에 던지니
덕산스님 깨우침 받음에 많은 말씀 빌리지 않고
빨간 눈 거북이는 타오르는 나무더미에도 부딪치니
암두스님과 동행할 때 오로지 하나만을 썼다네
오산의 객점에서 도를 이루고
한밤중에 미쳐서 날뛰었으며
상골암 아래 발길 멈춰
온몸을 내동댕이쳤네
둥근 나무공 굴려 보내니
현사는 재빨리 패를 만들고
별비사 꿈틀거리며 달려오니
운문스님 허둥대며 풀을 헤치네
문 열자 잠깐 머뭇거리는 새에
영관 노스님에게 멱살 잡히니 봉황 새끼 아니었고
북울려 대중운력 하라 하니
온 누리를 움켜쥐어도 좁쌀 한 알만하구나
천칠백 선지식을
한 자루 국자로 모조리 긁어내고
오륙십리 설봉산을
방석 위에서 빼앗아버렸네
송산의 작은 부도탑 하나
차곡차곡 몇 층이나 쌓였는고
옛 가을 찬 샘물 소발자국만한 소용돌이는
그 얼마나 깊으련가
산 앞엔 하루종일 이리새끼 없으니
이따금씩 노승의 발자국소리 들리고
방앗간 아랜 일년내내 참새 보기 어려워
공양미 축이 날까 근심이 없네
일생을 대왕님 공양 받았으니
무엇으로 그 은혜 보답할까
양손으로 땅 짚으며
살살 때려라, 살살 때려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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