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오가정종찬五家正宗贊

13. 설봉 사혜(雪峰思慧) 선사 / 1071~1149

쪽빛마루 2015. 2. 7. 08:53

13. 설봉 사혜(雪峰思慧) 선사

       / 1071~1149

 

 

 스님의 법명은 사혜(思慧)이다. 대통스님의 법을 이었으며 전당(錢塘)사람으로 유씨(兪氏) 자손이다.

 

 

 상당하여 말하였다.

 “교학의 큰 그물을 펴서 인천의 고기를 건지고 성인을 수호한다 하여도 달마대사에게 진흙탕을 끼얹는 것만 못하니 토끼를 보고 매를 놓아 잡고 사슴을 만나 화살을 쏘는 정도일 뿐이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대중아!”하고 부르더니 “화살이 명중됐다!” 하였다.

 

 

 상당하여 말하였다.

 “예전에 약산 유엄(藥山惟儼)스님은 걸핏하면 한달이 넘도록 조참(早參), 만참(晩參)에 나오지 않다가 하루는 대중이 모이자마자 그냥 방장실로 돌아가버렸다. 선덕(禪德)들이여! 그 당시의 불법은 이처럼 담박하였으니 따져보면 그래도 조금은 낳은 면이 있다. 오늘날엔 매일 종을 울리고 법당에 올라가 구구히 설법하여 묻는 자의 입은 몰래처럼 돌아가고 답한 자의 혓바닥은 벼락처럼 빨리 움직임이 모두 오늘 이 법회와 비슷하다. 그러나 석존이 남기신 영산의 혜명(慧明)은 실끝에 매달린듯 가냘프고, 소실봉 달마의 가풍은 절박한 위기에 놓여있다. 분연히 뜻을 세워 종문을 붙잡아 세울 납승을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을까?”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앞으로 나와 할 한마디로 이 대중을 흩어버려라.

 그렇게 한다면 귓가가 조용해질 뿐 아니라 바른 법이 오래도록 머물 수 있을 것이니, 어찌 거룩한 일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떠받아 올렸는데 혹시라도 용이 되지 못한다면 이 산승은 이 명을 거꾸로 시행하여 주장자로 몽땅 쫓아버리겠다.”

 

 

 상당하여 말하였다.

 “남쪽으로 여러 선지식을 찾아다니느라 짚신이 모두 닳아버렸다가 배움을 끊고 하릴없이 앉아 세월을 보내노라니 범부의 마음이야 쉽게 벗어날 수 있지만 성인의 깨달음은 잊어버리기 어렵다. 터럭이라도 있으면 모두가 번뇌망상인 것이다.

 중도를 지켜 도를 이루는 일은 대지에 산을 일으키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사물에 응하여 형체를 나타내는 일은 당나귀가 우물을 들어다보는 꼴이다. 설령 계교하는 분별심이 없다해도 이미 자취는 남는 것이니 영감(靈感)이 상응하는 깨침에서 말하자면 점점더 멀어진다.

 힘쓸지어다. 여러분들이여! 마음을 잘못 쓰지 말고 각기 승당으로 돌아가라. 다시 무엇을 구하려 하는가.”

 

 

 상당하여 말하였다.

 “한 법을 통하면 만가지 인연이 바야흐로 통하리라.”

 그리고는 주장자를 뽑아들고 말하였다.

 “여기서는 깨치고 주장자를 끌고 해상을 활보하다가 운거산(運居山) 꼭대기에 이르거든 나를 위해 설봉스님에게 말을 전해다오. 쯧쯧!”

 

 

 상당하여 말하였다.

 “모든 법은 차별이 없다. 운문스님의 호떡, 조주스님의 차, 황학루 앞에서 옥피리 불기, 오월 강성(江城)에 매화꽃이 떨어지는 일, 태원(太原)의 부(孚)상좌가 부끄러워한 일, 5경(五更)에 나팔소리를 듣고 동이 트니 비파를 켜는 일...!” 하더니 악! 하고 할을 하였다.

 

 

 한 스님이 물었다.

 “옛 법당에 등불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합니까?”

 “동쪽 벽에서 서쪽 벽을 친다.”

 

 

 상당하여 말하였다.

 “눈동자는 시방세계에 가로 뻗어 있고 눈썹은 위로는 하늘로 치솟았으며 아래로는 황천을 뚫었는데, 자! 말해 보아라. 콧구멍은 어느 곳에 있느냐?”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차(箚)!”하였다.

 

 

 찬하노라.

 

 

운문의 8세 손으로

문과 담장을 열기 어렵네

 

한 기연 드리우니 평지에 파도일고

한 경계 보여주니 가파른 절벽 중에 은밀한 곳이라

 

용을 덮치고 봉황을 잡으려고

연실(藕絲)그물 촘촘하게 하늘에 얽고

토끼를 사냥하고 노루를 쏘는데

쑥대 화살은 쏘는대로 표적에 맞았구나

 

입은 물레같고 혀는 벼락같으나

설봉 문하에는 함정을 파묻어 놓았으며

몸은 누란의 위기요 목숨은 가냘픈 실에 매달려

영취산 앞에서 가슴치며 억울타 하소연하네

 

무위(無爲)를 배워 앉아서 세월 보내며

물 건너며 고기 자국을 찾고

여러 선지식 찾아가느라고 짚신 닳리며

산을 지나다가 개미 자취 찾아보네

 

만가지 인연 벗어나지 못하여

헛되이 주장자 뽑아들고 바다 위를 활보하며

한 법은 차별 없으니

매화꽃 떨어지는 강성의 어지러운 소리를 듣는다

 

숭산 소림사의 가득 찬 눈속에 서 있음을 비웃으니

작은 고기가 큰 고기를 삼킨 격이요

허물어져 등불도 없는 옛 법당에 살며

동쪽 벽에서 서쪽 벽을 친다

 

성인의 깨침, 범인의 알음알이에 터럭만큼도 다 끊어야 번뇌 없는데

수레바퀴 자국에서 도리어 갈림길을 보고

눈썹과 눈동자 시방세계에 뻗고 하늘에 치솟는데

콧구멍에는 원래 숨쉬는 기운 없구나

 

뼈에 사무친 풍류는 아무도 미치지 못하리

전당강 위에 비파를 뜯고 황학루 앞에 불제

천봉 만봉은 찬 연기에 갇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