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권
위앙종
1. 위산 대원(潙山大圓) 선사
/ 771~852
스님의 법명은 영우(靈祐)이며, 백장 회해(百丈懷海)스님의 제자로 복주 조씨(福州趙氏) 자손이다. 처음 백장스님을 찾아뵈었을 때였다. 모시고 서 있다가 밤이 깊었는데 “화로에 불씨가 남아있는지 보라”고 하자 스님이 화로를 헤쳐 보고서 “없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백장스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화로 속을 깊숙이 헤쳐 작은 불씨를 꺼내 들면서 말하였다.
“없다고 하더니만 여기 있지 않느냐.”
이 말에 스님은 크게 깨치고서 절하고 깨친 바[見處]를 말씀드리니 백장스님이 말하였다.
“이는 나타나는 단계일 뿐이다. 경에 말씀하시기를 ‘불성의 뜻을 알고자 한다면 반드시 시절 인연을 살펴야 한다’ 하였으니 시절이 이르면 미혹하던 마음이 갑자기 깨침을 얻고 잊었던 일이 갑자기 생각난 듯하여 자기의 물건이지 남에게서 얻은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조사의 말씀에 ‘깨치고 나서도 깨치기 전과 같아서 마음도 없고 법도 없다’ 하였으니 이는 범인이니 성인이니 하는 헛된 마음이 없다면 본래의 마음과 법은 원래 스스로 완전함을 말한 것이다. 그대는 이제 그 점을 깨달았으니 잘 보호하여 지키도록 하라.”
스님은 어느 날 찻잎을 따다가 앙산 혜적(仰山慧寂)스님을 보고서 말하였다.
“온 종일 찻잎을 따면서 그대의 말소리만 들릴 뿐 그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구나.”
앙산스님이 차나무를 흔들어대자 스님이 말하였다.
“그대는 그 작용만 알 뿐 본체는 얻지 못했다.”
앙산스님이 말하였다.
“스님은 어떻습니까?”
스님은 한참을 잠자코 있자 앙산스님이 다시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본체만 얻었을 뿐 작용은 얻지 못했습니다.”
“그대에게 몽둥이 30대를 쳐야겠구나.”
운암 담성(雲巖曇晟)스님이 찾아왔을 때 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오랫동안 약산 유엄(藥山惟儼)스님의 회중에 있었다고 하던데, 그런가?”
“네!”
“무엇이 약산 큰스님의 모습인가?”
“열반하신 뒷 몸이었습니다.”
“열반 뒷 몸이 어떠셨든가?”
“물을 뿌려도 묻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운암스님이 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백장 큰스님의 모습입니까?”
“높고 당당하며 휘황찬란하다. 소리 전이어서 소리도 아니며 모습 후여서 모습도 아니니 모기가 무쇠소 위에 앉은 것과 같아서 침을 꽂을 곳이 없다.”
유철마(劉鐵磨)스님이 찾아오자 스님이 물었다.
“이 늙은 암소야! 네가 왔느냐?”
“내일 오대산에서 큰 재가 있다고 하는데 스님도 가시렵니까?”
스님이 벌렁 눕는 시늉을 하자 유철마 스님은 그냥 나가버렸다.
하루는 스님이 낮잠을 자다가 앙산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는 벽쪽으로 돌아누으니 앙산스님이 말하였다.
“스님께선 왜 그러십니까?”
스님은 일어나 말하였다.
“내 마침 꿈을 꾸었는데 네가 해몽 한번 해 보아라.”
앙산스님이 세숫대야 가득히 물을 떠다 주자 스님은 그 물로 세수하였다. 얼마 후 향엄 지한(香嚴智閑 : ?~898)스님이 찾아오자 스님이 말하였다.
“내 조금 전에 꿈을 꾸었는데 앙산이 나를 위해 해몽해 주었다. 너도 한번 해몽해 보아라.”
향엄스님이 차 한 잔을 달여오니 스님이 말하였다.
“두 사람 다 사리자보다도 신통하구나.”
하루는 스님이 벽을 바르고 있었다. 그때 이군용(李軍容)이 관복을 입은 채로 스님의 뒤에 와서 홀(笏)을 들고 서 있었다. 스님이 뒤를 돌아다보고 흙판을 기울여 흙을 뜨려고 하자 이군용이 홀을 가지고 흙을 퍼 담은 시늉을 하였다. 스님은 흙판을 내동댕이 치고 그와 함께 방장으로 돌아갔다.
한 스님이 물었다.
“위산의 한닢 삿갓을 쓰지 않고는 막요촌(莫窯村 : 부역이 면제된 동네)에 갈 수 없다 하는데, 무엇이 위산의 한닢 삿갓입니까?”
스님은 그 스님을 부르면서 “가까이 오라” 하였다. 그 스님이 가까이 가자 한 차례 밟아버렸다.
상당하여 말하였다.
“이 노승이 죽은 뒤에 산 아래 신도 집에 한 마리 물빛 암소가 되어 왼쪽 겨드랑이에 ‘위산의 중 아무개[潙山僧某甲]’라고 다섯 글자를 쓸것이니 이때 위산의 중이라 부르면 물빛 암소는 어찌하며, 또 물빛 암소라 부르자니 위산의 중은 어쩌겠느냐? 그렇다면 결국 무어라 불러야 하겠는가?”
이때 앙산스님이 절하고 물러갔다.
앙산스님이 여름 안거가 끝날 무렵에 스님에게 문안을 드리자 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한 여름 동안 방장에 올라오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 아래에서 무슨 일을 했었나?”
“저는 아래 있으면서 한 뙈기 화전을 일구어 좁쌀 한 소쿠리를 얻었습니다.”
“그대는 올 여름을 헛되이 보내지는 않았구나!”
이번에는 앙산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한 여름동안 무엇을 하셨습니까?”
“낮에는 밥을 먹고 밤이면 잠을 잤다.”
“스님께서도 올 여름을 헛되이 보내지는 않으셨군요.”
앙산스님이 말을 해놓고 혓바닥을 쑤욱 내밀자 스님이 말하였다.
“혜적아, 어찌하여 제 목숨을 스스로 잃으려 하느냐.”
찬하노라.
독기[蠱毒] 서린 집안
오랑케 씨 멸종되다
마음엔 반점의 순박함도 없고
몸뚱이는 천근이나 무겁구나
큰 스님이 불씨를 들어 보여주시어
산 채로 눈동자 바꾸었고
혜적에게 차나무를 흔들도록 이끌어
본체와 작용을 완전히 드러내보였네
몸을 돌리는 일도 오히려 알지 못하는데
부질없이 이군용에게 진흙을 퍼올리게 하였고
눈감고 낮잠 자다가 몇 번이나 깨었던고
어거지로 향엄에게 해몽을 시켰네
밭에 김매는 아이는 한 소쿠리 좁쌀을 얻었는데
90일 동안 방장실에 올라오지 않았다고 이상히 생각하고
삿갓 만드는 스님이 막요촌에 왔다가
한번 밟히고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였구나
왼쪽 옆구리에 이름 썼으니
누가 위산의 중이 아니라고 하겠나
몸을 던져 누웠을 때
오대산의 공양을 움켜쥘 것이라 내 의심했었지
스승의 큰 스님 모습이
찬란한 줄은 대중이 모두 알고 있는 터
진정한 산 늙은이는
애당초 흐리멍텅한 사람이 아니었네
현묘한 가풍을 따로 세워 교화의 기연을 펼치니
옛 길목에 부서진 비석조각 널려있으나
우리 종문의 정통을 기록치 못함이 애석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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