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오가정종찬五家正宗贊

2. 앙산 지통(仰山智通) 선사 / 803~887

쪽빛마루 2015. 2. 7. 08:56

2. 앙산 지통(仰山智通) 선사

     / 803~887

 

 

 스님의 법명은 혜적(慧寂)이며, 위산스님의 법제자로 소주 섭씨(韶州葉氏) 자손이다.

 스님이 부모님 슬하를 떠나 여러 곳을 돌아다닐 때였다. 어떤 사람이 장난삼아 스님의 부채에 글을 써 주었다.

 

 

혜적이 행각을 떠나니

마구니들은 누구더러 없애라 할꼬?

寂子去行脚  諸魔使誰滅

 

 

 스님은 그 뒤에 한 구절을 덧붙였다.

 

 

용이 뱀 뱃속에서 태어날 때

열 달 동안 배를 빌렸다네.

龍生蛇腹中  借他十箇月

 

 

 사람들은 스님을 달리 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스님이 백정 출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윗 글에서 ‘많은 마구니[諸魔]’를 ‘돼지털(猪毛)’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처음 탐원 응진(耽源應眞)스님을 찾아뵙고 이미 묘한 종지를 깨쳤는데 탐원스님이 말하였다.

 “남양 혜충(南陽慧忠)국사가 살았을 때 육대 조사의 원상을 모두 97매나 전해 받아가지고 있었다. 국사께서 이것을 내게 전해주면서 ‘내가 죽은 뒤 30년만에 남방에서 한 사미승이 찾아올 것이다. 그가 우리 불교를 일으킬 것이니, 이 원상을 차례로 전수하여 끊이지 않게 하라’ 고 하셨다. 내 이제 그대에게 이 원상을 주겠으니 잘 간직하도록 하라.”

 그리고는 원상을 전하였으나 스님은 한번 보고서는 불태워버렸는데, 하루는 탐원스님이 말하였다.

 “지난날 준 원상은 애지중지해야 한다.”

 “그때 보고서 곧 불태워버렸습니다.”

 “우리 문중에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고 윗 스승님들과 조사님들, 그리고 큰 성인이라야 알 수 있는 것인데 그대는 어찌하여 그것을 태워버렸는가?”

 “저는 한번 보고 그 뜻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그저 활용하면 되는 것이지 책에 집착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대는 그렇다치고 후인들은 신심이 미치지 못할 것이다.”

 “스님께서 원하신다면 다시 기록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스님은 다시 한 권의 책을 편집하여 탐원스님에게 바쳤는데 조금치도 빠지거나 잘못된 데가 없었다. 이에 탐원스님이 “과연 그렇구나” 하였다.

 

 

 스님이 위산스님을 찾아뵈었을 때 물었다.

 “어느 곳이 참 부처가 머물고 있는 곳입니까?”

 “생각하되 생각이 없고 묘함으로 무궁한 신령의 불꽃을 돌이켜 생각하라. 생각이 다하여 근원으로 돌아오면 성품과 모습이 항상하고 진리와 현실이 둘이 아니어서 참 부처가 여여(如如)하리라.”

 스님은 이 말에 크게 깨치고 이로부터 15년 동안 위산스님을 모셨다.

 

 

 스님이 직세(直歲 : 공사 등의 일이나 재정을 맡은 소임)가 되어, 일을 하다가 돌아오니 위산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밭에서 옵니다.”

 “밭에는 몇 사람이나 있더냐?”

 스님이 삽을 땅에 꽂고 두 손을 맞잡고 섰다.

 위산스님이 “오늘 남산에 많은 사람이 풀을 베고 있더라” 하니 스님은 삽을 뽑아들고 가버렸다.

 

 

 하루는 위산스님을 따라 산놀이를 갔다가 반석 위에 앉아 있는데 어디선가 까마귀 한 마리가 홍시를 물고와 앞에 떨어뜨렸다. 위산스님이 그것을 주워 스님에게 건네주자 스님이 받아서 씻어드리니, 위산스님이 말하였다.

 “그대는 이 감이 어디에서 왔다고 생각하나?”

 “스님의 도력에 감응한 것입니다.”

 “그대 몫도 없을 수 없지!”

 그리고는 스님에게 반쪽을 나눠주었다.

 하루는 위산스님이 물었다.

 “갑자기 어떤 사람이 그대에게 이곳의 종지를 물어본다면 무어라 대답하겠는가?”

 “동당(東堂) 사숙님이 계셨다면 제가 이렇게 쓸쓸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대가 대답하지 못한 죄를 용서하겠다.”

 “죽이고 살리는 것도 단 한마디에 있습니까?”

 “그대의 견해도 잘못된 것은 아니나 그대의 견해를 수긍하지 않는 사람이 또 하나 있다.”

 “그게 누구입니까?”

 위산스님이 노주(露柱)를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이것이다.”

 스님이 말하였다.

 “뭐라고 말합디까?”

 위산스님도 말하였다.

 “뭐라고 말하더냐?”

 그러자 스님은 말하였다.

 “백서화(白鼠花)는 세월따라 변하지만 은대(銀臺)는 변하지 않습니다.”

 

 

 스님은 어느 날 밤 꿈에 도솔천 내원궁(內院宮)에 들어갔는데, 법당 안에 모든 자리가 다 찼으나 제2좌(第二座)가 비어 있었다. 스님이 그곳에 앉자 한 존자가 백추를 치고서 “오늘은 제2좌께서 설법하실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스님이 일어나 백추를 치고 말하기를 “대승법은 4구(四句)를 떠났고 백비(百非)를 끊었으니 잘들 들어라” 하니 대중이 모두 흩어졌다.

 잠을 깨어 위산스님에게 아뢰자 위산스님이 말하였다.

 “그대는 이미 성인의 지위에 들어갔다.”

 스님은 절을 올렸다.

 

 

 향엄 지한(香嚴智閑)스님이 깨닫고 나서 게를 지었는데 위산스님이 그것을 듣고서 말하였다.

 “이 사람이 깨쳤구나!”

 스님이 말하였다.

 “이는 알음알이[心機意識]로 지은 것이니, 제가 몸소 그를 시험해 볼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그 후 스님이 향엄스님에게 물었다.

 “스님을 뵈었더니 사제의 오도송(悟道頌)을 칭찬하시던데 그대가 한번 해 보게나.”

 향엄스님이 송을 꺼내자 스님께서 말하였다.

 “이는 오랜 훈습으로 기억하였다가 지은 것이다. 만일 바른 깨침을 얻었다면 따로 한마디 해 보게.”

 향엄스님이 다시 ‘작년의 가난은 가난이 아니었고[去年貧未是貧]...’하는 게송을 설하자 스님이 말하였다.

 “여래선(如來禪)은 사제가 깨쳤다 하겠지만 조사선(祖師禪)은 아직 꿈에도 보지 못하였다.

 향엄스님이 다시 말하였다.

 “나에게 기틀 하나 있는데 깜박사이에 그것을 본다. 누군가가 만일 모른다면 따로이 사미승을 불러오라!”

 이에 스님은 돌아와 위산스님에게 알렸다.

 “기뻐하십시오. 지한사제가 조사선을 깨쳤습니다.”

 

 

 남탑 광용(南塔光湧)스님이 임제스님을 찾아뵌 뒤 스님에게 귀의하여 모시니 스님이 물었다.

 “무엇하러 왔느냐?”

 “스님을 뵈러 왔습니다.”

 “스님을 보았느냐?”

 “녜!”

 “스님이 당나귀를 얼마나 닮았던가?”

 “제가 스님을 뵙기에는 부처님도 닮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을 닮지 않았다면 무엇과 닮았던가?”

 “만일 닮은 데가 있다면 당나귀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이에 스님은 크게 놀라 말하였다.

 “범인과 성인 두 가지를 모두 잊어버리고 알음알이가 다하여 본체가 드러났구나! 내가 이 화두로 납자들을 20년이나 시험해왔으나 분명히 깨친 자가 없었다. 그대는 잘 간직하거라.”

 그리고는 스님은 항상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이 사람은 육신불(肉身佛)이다”라고 하였다.

 

 

 찬하노라.

 

바다를 다스리는 구슬이요

독룡의 아들이로다

 

달 동안 뱀의 뱃속을 비려 태어나니

구슬 한 알이 교반(蛟盤) 위에 떨어져 구르는구나

 

가까이 가서 두 손을 마주잡고 서니

향상(向上)의 기봉을 단도직입으로 전하였고

생각 다하여 근원으로 돌아가니

끝없이 신령한 불꽃을 튕겨내는구나

 

도솔궁 제2좌에서 설법할 때에

백추 치는 소리에 대중이 혼비백산하고

남산에 많은 사람이 풀을 베더라 함에

삽 뽑아들고 가버리니 꿈에선들 보았겠는가

 

위산스님 도력에 감응해서

까마귀 홍시 물고오니 반석에서 둘이 나누어 먹고

살리고 죽임이 말 한마디에 있으니

백서화는 변하지만 은대는 변함없네

 

모든 원상을 불태워

탐원스님 마음을 애태워놓고

작은 석가를 만났다 하는

호승(胡僧)에게 면전에서 호도당했구나

 

사미승 불러오라는 말에

향엄이 조사선을 깨쳤다 인가하고

왜 당나귀 닮았냐는 말에

납탑을 이끌어 취모검을 뽑아들게 하였네

 

사람들의 미움사는 곳에서는

그 집의 아비와 자식만 알게 할 뿐이지만

그러나 만고에 아름다운 일은

부처님 손으로도 가리기 어렵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