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운문록 雲門錄

[운문록 하(下)] 감변(勘辨) 145~161.

쪽빛마루 2015. 5. 25. 06:40

145.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누가 호떡을 만들었느냐?”

 그가 호떡 하나를 들어올리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우선 놔두고 긴 선상(禪床)에서 배워야 한다. 호떡은 누가 만드느냐?”

 “스님께서 저를 속이지 말아야 좋을 것입니다.”

 “이 날도둑놈아.”

 

146.

 스님이 길을 가는데 한 스님이 뒤를 따라갔다. 스님께서 주먹을 들더니 말씀하셨다.

 “이처럼 큰 밤을 몇 개나 먹을 수 있겠느냐?”

 “스님은 착각하지 마십시오.”

 “네가 착각이다.”

 “양민을 짓눌러 천민을 만들지 마십시오.”

 “고요한 곳이로다. 스바하.”

 

147.

 스님께서 직세(直歲 : 절에서 토목일을 맡아보는 소임)에게 물었다.

 “오늘은 무엇을 하였느냐?”

 “띠풀을 베고 왔습니다.”

 “조사를 몇이나 베었느냐?”

 “3백 명입니다.”

 “아침에 3천리, 저녁에 8백리를 가니 동쪽집 국자자루는 길고 서쪽집 국자자루는 짧다. 어떠하냐?”

 직세가 말이 없자 스님은 주장자로 때려서 쫓아버렸다.

 

148.

 한 스님이 재를 지내고 돌아오는데 스님께서 물었다.

 “재를 베푼 주인은 무엇을 공양하더냐?”

 그가 주먹을 세우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여기에서 너에게 물으니 이렇게 한다만, 큰방 앞에서 누군가 묻는다면 무어라고 대답하겠느냐?”

 “모든 것을 그때그때 봐서 하겠습니다.”

 “말 배우는 부류로군.”

 

149.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을 하느냐?”

 “열반두(涅槃頭 : 열반당을 책임맡은 일)를 합니다.”

 “병들지 않은 자가 있더냐?”

 “모르겠습니다.”

 “그렇다 해도 모르고 그렇다 하지 않아도 모르는군.”

 그가 말이 없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나에게 묻도록 하라.”

 그 스님이 “누가 병들지 않은 자입니까?” 하고 묻자 스님은 곁에 있는 한 스님을 가리켰다.

 

150.

 남웅(南雄)의 스님이 흰 모포 하나를 바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말해보라. 어디에 놓아야 할지를,”

 대꾸가 없자 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주장자 위에요.”

 스님께서 다시 곁에 있는 한 스님에게 물었다.

 “너는 남웅에 있을 때 이 스님을 알았느냐?”

 “알았습니다.”

 “함께 차실에 가서 차나 마시도록 하라.”

 

151.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땅을 차지하지 않는 한마디를 무어라고 하겠느냐?”

 “모르겠습니다.”

 “모르거든 우선 소주 땅의 객이 되도록 하라.”

 

152.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호떡을 몇 개나 먹을 수 있느냐?”

 “잊었습니다.”

 “먹은 것을 잊었는가, 안 먹은 것을 잊었는가?”

 “잊었다는데 무슨 먹고 안 먹고를 말합니까?”

 “네가 잊었으니 어디서 얻어오겠느냐?”

 

153.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너는 북쪽에서 왔는데 오대산에 갔던 적이 있느냐?”

 “녜.”

 “관서와 호남에서 부리 긴 새가 선(禪)을 설하는 것을 보았느냐?”

 “못 보았습니다.”

 스님은 주장자를 잡아 세우더니 입으로 훅 하고 부는 시늉을 하며 소리를 길게 빼더니 말씀하셨다.

 “선(禪), 선.”

 

154.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여름결제를 지냈느냐?”

 “스님께서 진실하게 묻는다면 말하겠습니다.”

 “속 빈 도적아.”

 

155.

 임제스님이 3구어(三句語)를 거량하여 탑주(塔主)에게 물었다.

 “탑 속의 스님은 몇 번째 구절을 얻었느냐?”

 탑주가 말이 없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나에게 묻도록 하라.”

 탑주가 그대로 질문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불쾌하면 말해 주마.”

 “어떤 것이 ‘불쾌하면 말해 주는 것’ 입니까?”

 “하나라 해도 성립되지 않고 둘이라 해도 옳지 않다.”

 

156.

 스님이 하루는 방장실에서 나오는데 어떤 스님이 주장자를 건네주자 받더니 다시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가 말이 없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오늘 편안하다.”

 “스님께서는 어째서 편안하신지요?”

 “입에 맞게 밥을 먹었기 때문이지.”

 

157.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숭수사(崇壽寺)에서 왔습니다.”

 “숭수사의 스님은 무슨 법문을 하더냐?”

 “스님은 발깔개를 가리키면서 대중에게 ‘발깔개를 알면 빙 두르고도 남으리라’ 하였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다.”

 “스님께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발깔개를 안다 해도 천지차이라 하리라.”

 

158.

 스님은 큰방 수좌에게 물었다.

 “말해보라. 산하대지와 네 자신이 같은지 다른지를.”

 “같습니다.”

 “나방 · 조개 · 개미등 모든 생물과 네 자신과는 같으냐, 다르냐?”

 “같습니다.”

 “너는 무엇 때문에 칼과 창을 마주 대하느냐?”

 

159.

 식초 만드는 채[醋寮]에서 손가락으로 가리켜 가면서 말씀하셨다.

 “이 항아리에는 초가 이렇게 가득 찼는데 저쪽 항아리에는 초가 저렇게 얕구나.”

 한 스님이 말했다.

 “사람이 가난하면 지혜가 짧고 말이 수척하면 털이 길지요”

 그러자 스님은 껄껄 웃으면서 나가버렸다.

 

160.

 좌주에게 물었다.

 “무슨 경전을 강의하느냐?”

 “「열반경」입니다.”

 “열반은 네 가지 덕[四德]을 갖추었다는데 그런가?”

 “그렇습니다.”

 스님은 주발을 집어들면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몇 가지 덕을 갖추었느냐?”

 “한 가지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옛사람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했을까?”

 “옛사람이 그렇게 말했다니, 무슨 말인데요?”

 스님은 주발을 두드리면서 말씀하셨다.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우선 경전이나 강의하게.”

 

161.

 공양할 때 어떤 스님이 곁에 모시고 서 있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배불리 먹었느냐?”

 대꾸가 없자 스님은 주장자를 잡고 말씀하셨다.

 “오히려 주장자가 배가 부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