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운문록 雲門錄

[운문록 하(下)] 유방유록(遊方遺錄) 15~30.

쪽빛마루 2015. 5. 25. 06:45

15.

 스님이 조산(曹山)에 갔을 때 조산스님이 시중하였다.

 “제방에선 다들 틀에 박힌 격식만을 붙들고 있다. 왜 그들에게 한마디에 딱 깨칠만한 말을 해주어 그들의 의심을 풀어주지 않느냐?”

 그러자 스님이 물었다.

 “아주 비밀스런 곳에선 무엇 때문에 있다는 것을 모릅니까?”

 “아주 비밀스럽기 때문에 있다는 것을 모르지.”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만 가까이 할 수 있을까요?”

 “매우 비밀스런 곳에서는 안되네.”

 “매우 비밀스런 곳에서가 아니라면 가까이 할 수 있을까요?”

 “그래야만 가까이 할 수 있지.”

 스님은 “녜, 녜” 하였다.

 

16.

 스님이 조산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사문의 동행입니까?”

 “절에서 심고 가꾼 상주물을 먹는 것이지.”

 “그렇게만 하면 됩니까?”

 “너도 쌓아둘 수 있느냐?”

 “저도 쌓아두었습니다.”

 “그래 무엇을 쌓아두었느냐?”

 “옷 입고 밥 먹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왜 털쓰고 뿔달린 축생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러자 스님은 절하였다.

 

17.

 도장로(瑫長老)가 보살이 손 안에 잡은 붉은 깃발을 보고 “무엇인가?” 하고 묻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무례한 놈이로구나.”

 “어째서 무례하다는 것인가?”

 “너는 외도의 종[奴]도 못되겠구나.”

 

18.

 스님이 천동(天童)에 이르자 천동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틀림없이 얻었느냐?”

 “스님께선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모르겠느냐, 눈앞에 싸인 꾸러미다.”

 “알면 눈앞에 싸인 꾸러미입니다.”

 

19.

 신주(信州)의 아호(鵝湖)스님이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깨치지 못한 사람에게만 긴 시간 들떠 쫓긴다고 말하지 말라. 설사 깨쳐서 갈 곳을 분명히 안 사람이라 해도 아직은 들떠 쫓긴다 하겠다.”

 스님은 듣고 내려와 이 말을 가지고 수좌에게 물었다.

 “조금전에 아호스님이 시중하기를, ‘깨치지 못한 사람도 들떠 쫓기며 깨친 사람도 들떠 쫓긴다’ 하였는데 그 뜻이 무엇이었겠는가?”

 “들떠 쫓기기 때문입니다.”

 “수좌는 머리가 희끗하고 이빨이 누렇게 되도록 여기 오랫동안 살았는데도 그런 말을 하느냐?”

 “스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잘 모르겠군요.”

 “말할테면 말하고 볼테면 보시오. 허나 보지 못했다면 어지럽게 말하지 말라.”

 “그렇다면 주지스님이 들떠 쫓긴다고 말한 것은 무엇입니까?”

 “머리에도 형틀, 말에도 형틀이구나.”

 “그렇다면 불법이 없겠군요.”

 “이것이 문수 · 보현의 보살경계다.”

 

20.

 스님이 행각할 때 어떤 관리가 물었다.

 “천지를 안정시킬 한마디 말이 있는지요?”

 “소로소로시리스바하.”

 

21.

 스님이 강주(江州)에 갔을 때, 진상서(陳尙書)라는 사람이 스님을 모시고 공양하였다. 그는 스님을 뵙자마자 대뜸 이렇게 물었다.

 “유교(儒敎) 경전은 말할 것도 없고 3승 12분교에도 가르쳐 줄 좌주가 있습니다만 무엇이 납승이 행각하는 일입니까?”

 “이제껏 이 문제를 몇 사람에게 물어보았습니까?”

 “이제 막 스님께 여쭙는 참입니다.”

 “이제 막이라 한 것은 우선 그만두고 무엇이 교학(敎學)입니까?”

 “누런 책갈피를 붉은 축(軸)으로 묶은 것입니다.”

 “그것은 글씨나 말일 뿐입니다. 무엇이 경전입니까?”

 “입으로 말하려니 말뜻을 잃겠고, 마음으로 생각하려니 생각할 것이 없어집니다.”

 “입으로 말하려니 말뜻을 잃는다 함은 할말 있음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며 마음으로 생각하려니 생각할 것이 없어진다 함은 망상을 대치하기 위한 것입니다. 무엇이 경전입니까?”

 대꾸가 없자 스님이 말씀하셨다.

 “상서께서 「법화경」을 보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렇소?”

 “그렇습니다.”

 “「법화경」에서는 ‘살아가기 위해 하는 모든 생업이 실다운 모습[實相]과 하나도 어긋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말해보십시오. 비비상천(非非想天)에는 몇 사람이나 자리에서 물러나 있는지를.”

 대꾸가 없자 스님이 말씀하셨다.

 “상서는 경솔하게 굴지 마시오. 경론(經論)을 많이 배운 스님네 들이 그것을 버리고 유독 총림에 들어가 10년, 20년씩을 해도 어찌해 보질 못하는데, 상서라고 어떻게 알겠습니까?”

 상서는 절하며 말씀하셨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22.

 스님이 귀종사(歸宗寺)에 갔을 때, 한 스님이 물었다.

 “대중이 구름같이 모였는데 무슨 말씀을 하시렵니까?”

 그러자 귀종스님이 “둘둘 셋셋” 하니 그 스님이 “모르겠습니다” 하자 귀종스님은 다시 “셋셋 둘둘” 하였다.

 스님은 다시 그 스님에게 물었다.

 “귀종스님의 뜻이 무엇이겠는가?”

 “모두가 그런식이었습니다.”

 “그대는 담주(潭州)의 용아(龍牙)스님께 가 뵌 적이 있느냐?”

 “있습니다.”

 “썩은 나무등걸이나 치는 놈아.”

 

23.

 건봉(乾峯)스님이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법신에는 세 가지 병통과 두 가지 빛이 있다. 반드시 이것을 낱낱이 꿰뚫어야 하고 나아가서 상황에 맞게 작용하는[照用] 본분한 구멍[向上一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그리고 나서 건봉스님은 한참 말이 없었다.

 스님은 불쑥 나서며 물었다.

 “암자 안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암자 바깥 일을 보지 못합니까?”

 건봉스님이 껄껄 웃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래도 저는 의심이 남았습니다.”

 “자네는 무슨 망상을 그렇게 부리는가?”

 “스님께서 자세히 가르쳐 주셔야 하겠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비로소 편안히 앉는 경지를 이해한다.”

 스님은 “녜, 녜” 하였다.

 

24.

 건봉스님이 시중하였다.

 “하나를 거론해 주면 둘을 이야기하지 못하며, 하나를 놓아주면 두 번째에 떨어져 있다.”

 스님이 말씀하셨다.

 “어제 대중이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천태산에서 왔다가 다시 경산(徑山)으로 갔다’ 하였습니다.”

 건봉스님은 “전좌야, 내일은 대중운력을 하지 못하겠구나” 하더니 법좌에서 내려와 버렸다.

 스님은 건봉스님에게 말했다.

 “스님, 대답을 해주십시오.”

 “그가 나에게도 찾아왔다더냐?”

 “그렇다면 제가 늦었겠군요.”

 “이럴수가, 이럴수가 있느냐?”

 “후백(侯白)이라 했더니 후흑(侯黑)이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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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閩族)에 후백(侯白)이라는 꾀많은 도둑이 있었는데, 그보다 한 술 더 뜨는 후흑(侯黑)이라는 여자의 꾀에 속아넘어갔다는 고사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는 뜻을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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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스님이 관계(灌溪)에 갔을 때, 어떤 스님이 관계스님이 한 말을 들려주었다.

 “ ‘어디고 막힌 벽이 없고 사방에도 문이 없다. 아무것도 없이 말끔하여 손을 댈 수가 없다’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스님에게 물었다.

 “어떻습니까?”

 “그렇게 말하기는 쉬워도 벗어나기는 매우 어려울걸.”

 “관계스님의 말씀을 인정하지 않으십니까?”

 “조금전에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관계스님을 어느 세월에 꿈엔들 보겠느냐?”

 “저도 할말이 있습니다.”

 “한마디 묻겠다. ‘어디고 막힌 벽이 없고 사방에도 문이 없으니 아무것도 없이 말끔하여 손을 댈 수 없다’ 하였는데, 말해보라. 대범천왕(大梵天王)과 제석(帝釋)이 무엇을 묻고 답하는지를.”

 “어찌 남의 일에 간여하겠습니까?”

 그러자 스님은 “악!” 하더니 말씀하셨다.

 “우루루 몰려다니면서 밥이나 축내는 놈 같으니.”

 

26.

 진상서가 운거(雲居)스님의 공양주에게 물었다.

 “운거스님은 저보다도 높소? 낮소?”

 공양주는 말이 없었다.

 상서가 스님에게 묻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상서는 말을 꺼내서 속을 들키지 마시오.”

 

27.

 스님이 영중에 있을 때 한 노스님에게 물었다.

 “언제든지 어떻게 분별하여 압니까?”

 노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엇을 언제든지라고 하느냐?”

 “석가부처님은 말을 마쳤고 미륵은 아직 모릅니다.”

 또 노스님 한 분이 상당하여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이런 식의 거론은 문앞에 닥친 날카로운 칼날과 같으니 반드시 한마디 말 끝에 죽이고 살릴 수 있어야만 하리라.”

 스님은 대중 가운데서 나오더니 말씀하셨다.

 “스님께서 너무 오래 법문하셔서 대중이 큰방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뭐라구?”

 “시간은 물같이 흐릅니다.”

 

28.

 스님이 영중에 살 때 유나와 함께 기거하였는데 그 때에 질문하였다.

 “옛사람이 불자를 잡아 세웠다가 불자를 놓은 의미가 무엇인가?”

 “앞 생각을 털고 뒷 생각을 털어버린다는 뜻입니다.”

 스님은 “그렇지, 그래” 하더니 다시 말씀하시기를 “대답을 한건가, 안한건가” 하더니 다시 말씀하셨다.

 “예의를 안다 할 만하군.”

 

29.

 낙포(洛浦)스님이 한 스님의 마음을 떠보려고 말씀하셨다.

 “요즈음 어디에서 왔느냐?”

 “형남에서 왔습니다.”

 “한 사람이 그리로 갔는데 만났느냐?”

 “만나지 못했습니다.”

 “왜 만나지 못했지?”

 “만났더라면 머리가 부서져 가루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대는 세치 혀끝이 매우 치밀하구나.”

 스님은 이 소문을 들었는데 그 뒤 강서에서 그 스님을 만자 그 일을 물었다.

 “그런 말을 한 일이 있었더냐?”

 “있었습니다.”

 “낙포가 거꾸로 3천리를 후퇴했군.”

 

30.

 스님이 영수암(靈樹庵) 지성대사(知聖大師)의 회중에서 수좌가 되었다. 그때 한 스님이 지성대사에게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나는 할 말이 없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스님에게 물었다.

 “갑자기 비석에 새길려면 무슨 말이 합당하겠느냐?”

 몇몇 스님들이 말을 던졌으나 모두 맞히지 못하자 지성대사가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가서 수좌를 모셔오너라.”

 스님이 오자 지성스님은 앞의 대화를 거론하면서 물으니 스님은 말씀하셨다.

 “어렵지도 않군요.”

 “무어라고 말하겠는가?”

 “누군가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그저 ‘스님’이라고만 하겠습니다.”

 지성대사는 깊이 인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