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운문록 雲門錄

[운문록 하(下)] 유방유록(遊方遺錄) 1~14.

쪽빛마루 2015. 5. 25. 06:44

운 문 록

 

유방유록(遊方遺錄)

 

1.

 스님이 처음 목주 도종(睦州道宗) 스님을 참례하였을 때, 목주스님은 스님이 오는 것을 보자마자 문을 탁 닫아버렸다. 스님이 문을 두드리자 목주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누구냐?”

 “전데요.”

 “무엇 하려고?”

 “본분사를 밝히지 못했습니다. 스님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목주스님은 문을 열고 힐끗 보더니 바로 문을 닫아버렸다. 스님은 이렇게 계속 사흘을 가서 문을 두드렸는데, 사흘째 되던 날 목주스님이 비로소 문을 열어 주었다. 스님은 이에 밀치고 들어갔더니 목주스님은 대뜸 멱살을 움켜쥐고 말씀하셨다.

 “말해라, 말해.”

 스님이 무어라고 하려는데 목주스님은 밀어제치면서 말씀하셨다.

 “이런 고물[轆轢鑽 : 진=秦나라 군수품] 같으니!”

 스님은 여기서 깨쳤다.

 

2.

 스님은 설봉장(雪峯莊)에 이르러 한 스님을 보고 물었다.

 “상좌는 오늘 절에 올라갈 생각이오?”

 “그렇습니다.”

 “한 가지[一則因緣]만 부탁합시다. 당두(堂頭 : 설봉스님) 스님에게 묻되 다른 사람의 말이라고 해서는 안되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상좌께서 절에 올라가면 당두스님이 상당하여 대중들이 모여 앉을 것이요. 그때 불쑥 나서서 팔뚝을 걷어부치고 ‘이 늙은이야, 어째서 목에 씌운 칼을 벗지 못하느냐’ 하시오.”

 그 스님은 시킨 그대로 했다. 다 듣고 난 설봉스님은 바로 법좌에서 내려와 멱살을 잡아 세우면서 말씀하셨다.

 “얼른 말하라, 얼른.”

 대꾸가 없자 설봉스님은 멱살을 풀면서 말씀하셨다.

 “네 말이 아니지.”

 “제 말입니다.”

 “시자야, 오랏줄과 방망이를 가져오너라.”

 그랬더니 그 스님이 말했다.

 “이는 저의 말이 아니라 설봉장 위에 절(浙) 스님 한 분이 저더러 말하라 하였습니다.”

 설봉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중들이여, 장(莊)에 가서 5백명을 지도할 선지식을 모셔 오너라.”

 스님이 다음날 산에 오르자 설봉스님은 보자마자 말씀하셨다.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가?”

 그러자 스님은 머리를 숙였고 여기서 깨쳤다.

 

3.

 스님이 설봉에 있을 때 어떤 스님이 설봉스님에게 물었다.

 “ ‘눈에 보이는 대로 말할 줄 모른다면 걸음을 뗀들 어떻게 길을 알겠느냐’ 하였으니 무슨 뜻입니까?”

 설봉스님이 “아이고, 아이고” 하였으나 그 스님은 알아듣지 못하고 스님에게 물었다.

 “ ‘아이고’ 한 뜻이 무엇입니까?”

 “삼[麻] 서 근, 베[布] 한 필이다.”

 “모르겠습니다.”

 “다시 석 자[尺] 죽장(竹杖)이나 들어라.”

 그 후 설봉스님은 이 소문을 듣더니 기뻐하며 말씀하셨다.

 “내 항상 이 납자를 의심했더니….”

 

4.

 스님이 행각할 때 강사[座主] 하나를 만났는데 그는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천태산 국청사(國淸寺)에서 공양 시간에 설봉스님은 발우를 들고 ‘말을 한다면 너에게 발우를 주겠다’ 하기에 나는 ‘이것은 화신불[化佛]이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설봉스님이 ‘너는 강사의 종[奴]도 못되겠구나’ 하시기에 저는 ‘모르겠습니다’ 하였습니다. 설봉스님이 ‘네가 나에게 묻거라. 내 말해주리라’ 하시기에 제가 비로소 절하였더니, 설봉스님은 걷어 차서 쓰러뜨렸는데 저는 7년이 지나서야 보게 되었습니다.”

 다 듣고 나서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7년이 되어서야 보게 되었군요.”

 “그렇습니다.”

 “7년을 더 주어야만 할 것입니다.”

 

5.

 스님이 절[浙]땅 온(蘊)스님의 회상에 있을 때 하루는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거량하게 되었다.

 온스님이 법어를 내렸다.

 “견문각지(見聞覺知)가 법이지만 법은 견문각지를 여의었다. 여떻게 생각하느냐?”

 곁에 있던 한 스님이 말했다.

 “견(見)은 있는 것이라 단정합니다. 지금 눈앞의 모든 견문각지가 법이지만 법이라 해도 옳지 않습니다.”

 스님이 손뼉을 한 번 치자 온스님은 머리를 들었다. 스님께서 “그래도 하나가 부족하군요” 하자 온스님은 “나도 이점에 있어서는 더 이상 모르겠다” 하였다.

 

6.

 스님이 공상(共相)에게 갔더니 공상이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설봉에서 옵니다.”

 “절실한 법문이 있거든 한 칙(則) 들어보게.”

 “지난번 전좌(典座)가 왔을 때 스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그에게 묻질 않으셨는지요?”

 “전좌는 우선 그만두게.”

 “화살이 신라로 날아가버렸습니다.”

 

7.

 스님이 영중(嶺中)에 있을 때 와룡(臥龍) 스님에게 물었다.

 “자기를 깨친 사람도 자기가 있는 것을 보는지요?”

 “자기가 보이지 않아야만 비로소 자기를 깨칠 수 있다.”

 다시 질문하였다.

 “길다란 선상 위에서 배우는 것은 몇 번째 기틀입니까?”

 “두번째 기틀이지.”

 “그렇다면 무엇이 첫 번째 기틀입니까?”

 “짚신을 단단히 신게.”

 

8.

 스님이 영중에 있을 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법신향상(法身向上)의 일입니까?”

 “향상은 말해주기 어렵지 않다만 너는 무엇을 법신이라 부르느냐?”

 “잘 살펴보십시오.”

 “살피는 것은 우선 그만두고 법신을 무어라고 설명하겠는가?”

 “이러이러합니다.”

 “그것은 길다란 선상에서 배운 것이다. 우선 너에게 묻겠다. 법신도 밥을 먹을 줄 알더냐?”

 그는 말이 없었다.

 그 뒤 어떤 스님이 양가암주(梁家庵主)에게 이 말씀을 드리자 암주는 말씀하셨다.

 “운문이 그대로 진창에 들어갔구나.”

 자복(資福)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한 톨이 부족해도 안되고 한 톨이 남아도 안된다.”

 

9.

 스님이 설봉에 살 때 장경(長慶) · 서원(西院)스님과 함께 공부 하였다.

 설봉스님이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온 누리를 움켜쥐었더니 좁쌀만한데 앞에다 던져주어도 이 칠통들이 모르는구나. 북을 쳐서 대중운력이나 하도록 하라.”

 서원스님이 스님에게 물었다.

 “설봉스님의 이 말씀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곳이 있는가?”

 “있지.”

 “무엇이 빠져나오지 못하는 곳인가?”

 “여우같은 망상을 내서는 안되네.”

 다시 “꽤 어지럽히는군” 하더니 또 “7요성(七曜星)*이 하늘에 밝구나” 하고는 다시 “남쪽은 염부제, 북쪽은 울단월”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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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요 : 해와 달. 화수금목토 다섯 별. 또는 북두성을 토요성(土曜星)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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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스님이 하루는 장경스님과 조주스님의 무빈주(無賓主) 화두를 거론하는데 장경스님이 물었다.

 “설봉스님이 그때 한 대 걷어찼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라면 그렇게 하질 않겠네.”

 “그러면 어떻게 하겠는가?”

 “조주의 돌다리는 북쪽에 있다.”

 

11.

 스님은 장경(長慶)스님과 석공(石鞏)스님이 삼평(三平)스님을 지도했던 화두*를 거량하였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해야만 석공스님이 되다 만 성인[半箇聖人]이라고 불렀던 것을 면할 수 있을까?”

 “댓가를 갚아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진위를 가려낼 수 있겠는가?”

 “물에 들어가야만 키 큰 사람을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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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공 혜장(石鞏慧藏)스님은 상당(上堂)할 때마다 활을 당기고는 활(喝) 한번 하고 말하기를 “화살을 보아라” 하였다. 이렇게 30년 동안을 계속하던 중, 어느 날 삼평(三平)스님이 듣고 법상 앞으로 바싹 나가서 앞가슴을 활짝 제치니 석공스님은 활을 버렸다. 삼평스님이 묻되 “이것은 사람을 죽이는 화살이거니와 무엇이 사람을 살리는 화살입니까?” 하니 석공스님은 활시위를 세 번 튕겼다. 삼평스님이 절을 하니 석공스님이 말하였다. “30년 동안 활을 두 번 화살을 쏘았는데 오늘에야 겨우 되다만 성인(聖人) 하나를 맞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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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스님이 동암(洞巖)에 갔을 때 동암스님이 물었다.

 “무엇하러 왔느냐?”

 “친히 뵈러 왔습니다.”

 “그렇게 치달려서 무엇하려는가?”

 “잠시도 머문 적이 없습니다.”

 “허물을 알았으면 되었다.”

 “스님은 그렇게 달려서 무엇하시렵니까?”

 

13.

 스님이 소산(疏山)에 이르자 소산스님이 물었다.

 “힘을 얻은 곳에서 한마디 해보게.”

 “스님께서는 더 큰 소리로 물어주십시오.”

 소산스님이 큰 소리로 묻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스님은 이른 아침에 죽을 드셨습니까?”

 “죽을 먹지 않는 것은 무엇인데?”

 “어지럽게 아비규환하여 무엇합니까?”

 

14.

 소산스님이 시중(示衆)하였다.

 “노승이 함통(咸通) 연간(860~874) 전에는 법신 주변사를 알았고 함통 연간 후에는 법신 향상사를 알았다.”

 그러자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함통 연간 전에 법신 주변사를 알았고 함통 연간 이후에는 법신 향상사를 알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

 “무엇이 법신 주변사입니까?”

 “마른 참죽(椿)나무다.”

 “무엇이 법신 향상사입니까?”

 “마른 참죽나무가 아닌 것이다.”

 “학인이 그 도리를 설명해도 되겠습니까?”

 “설명해 보게.”

 “마른 참죽나무가 어찌 법신 주변의 일을 밝힌 것이 아니며, 마른 참죽나무가 아닌 것이 어찌 법신향상의 일을 밝힌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법신도 모든 것을 다 포함하는지요?”

 “어찌 포함하지 않겠나.”

 스님은 물병[淨甁]을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법신이 이것도 포함합니까?”

 “이보게, 물병으로만 이해하지 말라.”

 그러자 스님은 절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