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총림성사叢林盛事

총림성사 上 20~22.

쪽빛마루 2015. 9. 24. 11:26

20. 원오스님의 늦제자가 되다 / 할당 혜원(瞎堂慧遠)선사


 할당 원(瞎堂慧遠)선사가 처음 무주(婺州) 금린산(金鱗山)의 주지를 지내고, 후에 건상(建上) 선적사(禪寂寺)의 청으로 그 곳의 주지로 가는 도중에 삼구(三衢)를 지나가게 되었다. 당시 설당 도행(雪堂道行)스님이 오거사(烏巨寺)의 주지로 있었는데 혜원스님이 그를 찾아가 법권(法眷 : 계보 권속)을 이야기하였다. 도행스님은 그와 이야기 한 후 기특하게 생각하여 열흘 간을 머물라 하고는 얼른 군(郡)으로 달려가 초연거사(超然居士)를 만나 말하였다.

 "사백(師伯) 원오(圓悟)스님이 늦게 둔 아들로서 사천 땅 출신 혜원이라는 스님이 있는데 어제 나의 산사에 왔소. 머지않아 건상의 주지로 부임하려 하는데, 그곳 산이 깊고 외져서 안타깝습니다. 거사께서 군수에게 말씀드려 이곳 어느 절에 그를 머물게 할 수 있겠습니까?"

 초연거사는 "곧 군수에게 말하여 그를 자호산(子湖山) 정업선사(定業禪寺)의 주지로 임명하였다." 이에 할당스님은 군수의 초청을 수락하고 대중설법을 하였다.


분수에 달갑게 여기면서 금린산을 굳이 지켜왔는데

그들이 선적사로 나를 잘못 불러들였네

도중에서 다시 어진 군수의 영을 받아

정해진 업은 피하기 어려워 자호산에 머무노라.

甘分金鱗困守株  誤他禪寂遠招呼

中途再領賢候命  定業難逃住子湖

 

 얼마 후 보은사(報恩寺)의 주지로 옮겨가게 되었는데, 당시 묘희스님은 형양(衡陽)에 주석하면서 스님의 이름을 듣고 법의와 함께 게를 보내왔다.

 

사천 땅 버릇없는 망나니는

참도 없고 거짓도 없이

하얀 몽둥이 하나로

부처가 찾아온다 해도 후려칠 것이다

한 가지 장점이 더 있다면

바리때 속에서 말을 달릴 줄 아는 것이지.

這川藞苴  無眞無假

一條白棒  佛來也打

更有一般長處  解向鉢盂裡走馬

 

 혜원스님은 뒷날 여러 사원의 주지를 지내다가 황제의 칙명으로 영은사(靈隱寺)의 주지가 되었다.

 

 

21. 깨진 사기그릇 / 밀암 함걸(密菴咸傑)선사

 

 밀암 걸(密菴咸傑 : 1118~1186)선사는 민땅(閩 : 福建省)사람이다. 처음 영(嶺)을 나와 무주(婺州) 지자사(智者寺)에서 햇볕을 쪼이고 있었는데 한 노스님이 물었다.

 "상좌는 이번 행각을 어디로 갈 예정이오?"

 "사명산(四明山) 육왕사(育王寺)를 찾아가 불지(佛智本才)스님을 뵙고자 합니다."

 "말세가 되어 도가 없으니, 후배 선승들이 행각에 한결같이 귀만 달고 다니지 눈이 없단 말이야!"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 육왕사에는 천명의 대중이 찾아와 노스님은 매일 그들을 맞이하기에도 겨를이 없는데 너희들에게 착실하게 기연을 틔워줄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이 말에 밀암스님은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저는 지금 어디로 가야 합니까?"

 "이 길로 구주(衢州) 명과사(明果寺)를 찾아가면 화편두(華扁頭 : 應菴曇華)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비록 후배지만 견식이 뛰어나니, 너는 그곳으로 가는 게 좋겠다."

 노스님의 말을 따라 밀암스님은 명과사 담화스님에게 귀의하였다. 담화스님의 가풍은 엄격하여 들어가기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함걸스님은 갖은 고초를 꺼리지 않았다. 하루는 담화스님이 방장실에서 그에게 물었다.

 "바른 법안이란 무엇인가?"

 "깨진 사기 그릇이 무슨 값어치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허공이 다 녹아 없어졌을 때는 어떻게 되는가?"

 "삐죽삐죽 주머니 속의 송곳자루가 불거져 나옵니다."

 "같은 죄를 두 번 벌주지는 않는다."

 담화스님은 즉시 법상에 올라 대중들에게 알렸다.

 "크게 깨친 사람이 법당 앞에서 절벽이 무너지고 바위가 깨질 만한 말을 하였노라."

 함걸스님은 담화스님을 의지하여 4년 동안에 많은 성인의 명맥(命脈)을 모조리 깨치고, 모친이 연로하여 고향에 돌아가겠다 하니 담화스님은 게를 지어 전송하였다.

 

크게 깨쳐 기연에 맞는 말로

곧장 정수리가 확 트였고

사년을 함께 지내며

묻고 따져도 훤하여 흔적이 없네

 

아직은 의발을 전하지 않았지만

그 기상 우주를 삼키리라

바른 법안을

도리어 깨진 사기그릇이라 하였네

 

이 걸음 모친을 뵈러 가는 길이나

결코 눌러앉진 말아다오

나에게 말후구가 있으니

네가 돌아오거든 전하리라.

 

大徹投機句  當陽廓頂門

相從經四載  徵詰洞無痕

 

雖未付鉢袋  氣宇呑乾坤

却把正法眼  喚作破沙盆

 

此行將省覲  切忌便跥跟

吾有末後句  待歸要汝遵

 

 뒷날 구주(衢州) 오거사(烏巨寺)의 주지가 되어 학인들이 수없이 운집하자 상당법문을 하였다.

 "종전에는 거짓말 노래를 부르지 않았지만 산에 불을 질러 밭사이의 골뱅이를 줍고, 하얀 해골 나무 위에 고기는 새끼를 낳고 세찬 여울 가에 새는 둥지를 튼다."

 이 말은 모두 스님이 명과사에 있을 때, 깊은 밤에 나무꾼의 노래를 듣고서 무명[漆桶]을 타파한 화두이다. 스님의 비밀스런 기연은 헤아릴 수 없는 경지였다.

 스님은 전후 일곱 차례나 큰 사찰의 주지를 지낸 후 태백산에서 열반하였다. 그러나 응암스님의 도는 함걸스님의 힘으로 크게 행하여진 것이다.

 참으로 행각하여 스승을 찾아가는 데에는 눈을 가지고 다녀야지 귀만 달고 다녀서는 안될 것이다. 비록 한 울타리 밑에 있는 사람이라도, 반드시 겪어 봐야 하며, 절의 크고 작음이나 대중의 많고 적음을 따라 세월을 허송해서는 안된다. 이 일에 있어서 바른 목적을 갖고 있지 않다면 아무리 석가모니 뱃속을 지나쳐 왔다 해도 똥막대기에 불과함을 알아야 하니 어찌 이를 가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22. 천동사의 수좌 / 차암 수인(且菴守仁)선사

 

 차암 수인(且菴守仁)선사는 월주(越州) 상우(上虞)사람이다. 어려서 천태교(天台敎)를 익히다가 처음 괄창(括蒼) 땅에서 설당(雪堂道行)스님을 따라 구주(衢州) 오거사(烏巨寺)를 지나는 길에, 때마침 설당스님의 보설(普說)법회를 듣게 되었다.

 "지금 그대들이 공부하는 일은 마치 활쏘는 법을 배우는 것과 같아서 먼저 발을 안정시켜 놓고 그 다음에 활쏘기를 배워야 한다. 뒤에는 비록 무심결에 쏘아도 오래 익혔기에 쏘는 족족 명중하게 된다."

 그리고는 악! 하고 할을 하면서 "지금 화살 날아간다!" 하니 수인스님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숙이며 화살 피하는 자세를 취하다가 밝게 깨쳤다.

 여름안거가 끝나자, 모친이 연로해서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인사를 드리니 설당스님이 게를 지어 전송하였다.

 

지난 날 유엄(惟儼)스님 '사상(事相)'을 모두 알고

신발 벗고 남쪽으로 큰스님 찾아갈 제

석두(石頭)로 가는 미끄러운 길 고생을 마다않고

몽둥이로 뒤통수 얻어맞으니 모든 게 마땅하구나

그대의 굳건한 뜻을 그 누구와 견주리오

괄창산 백련주(白練州)로 나를 찾아왔구나

거센 파도 소용돌이 치는 곳에

큰소리로 불러봐도 뒤돌아보지 않고

서산에 늙도록 함께 살자 하였더니

다시금 산넘어 고향길을 가겠다하네

돌아올 땐 아마 이 해도 저물겠지!

거기다가 조주에는 노두구(爐頭句)가 있으리라.

 

儼老昔年窮事相

脫履南游扣宗匠

石頭路滑不辭勤

腦後一槌曾兩當

仁禪勁志許誰儔

訪我蒼山白練州

 

萬浪千波洶通處

果然呼喚不回頭

西山積老期同住

又設重尋越山路

歸時應是歲華深

趙州更有爐頭句

 

 수인스님은 그후 매산(梅山)땅으로 돌아가 16년간 암자에서 살았다. 그 후 천동사(天童寺) 정각(宏智正覺 : 1091~1157)스님이 대주(隊州)에서 상우(上虞)에 이르러 그의 암자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되었는데, 침상을 맞대고 함께 이야기해 보고는 그를 매우 기특하게 생각하였다. 정각스님이 천동사로 돌아와 하안거가 끝나가도록 수좌(首座)를 맞이하지 않자 일 맡은 이들이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아뢰었다. 정각스님은 우리 수좌가 조만간 이곳으로 올 것이라 하고 시자를 월주(越洲)로 보내 수인스님을 맞이하였다. 수인스님이 천동사에 도착하자마자 수좌실로 초빙하니, 대중들은 이를 의아스럽게 생각하였으나 얼마 후 수인스님에게 불자를 잡고 패(牌)를 걸게 하니, 대중들은 그에게 굴복하였다.

 그 후 2년만에 굉지스님이 입적하자 묘희스님이 장례를 주관하였는데 동서 반열(班列)의 모든 승려가 포복(布服 : 승려의 喪服)을 입었으나 수인스님만은 이를 입지 않았다. 묘희스님이 이상하게 여겨 그 까닭을 묻자 수인스님은 은밀히 그 사유를 말하였다. 이에 묘희스님은 "원래 이 사람은 설당 회하에서 온 사람이였군!"하였다.

 그는 후일 장노사(長蘆寺)의 주지를 지냈으며 법석이 크게 융성하였다.

 오대산 노파 화두에 대하여 지은 송이 있는데 학인들은 앞다투어 이를 읊었다.

 

등심초며 쥐엄나무 약초를 파는 점포를 열어 놓고

날마다 한 되 한 홉 사갈 사람을 기다리며 세월을 보내는데

끊임없이 장마는 계속되어

본전 · 이자 모두 날리고 수심에 젖어 문전에 기대섰다.

開箇燈心皁角鋪  日求升合度朝昏

只因霖雨連綿久  本利一空愁倚門

 

 현모(顯謨閣學士) 여정기(呂正己)가 일찍이 스님에게 도를 묻고 떠나면서 게를 써달라 하니 스님은 붓을 쥐었다.

 

그대가 오늘 이렇게 장노사에 왔는데

나의 옷 털어봐도 아무런 물건없네

가다가 만난 사람이 내살림 어떻더냐고 묻거든

바람이 거세고 파도가 거칠더라고 전해주오.

君今親切到長蘆  抖擻衣衫一物無

此去逢人如借問  但言風急浪華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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