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고애만록枯崖漫錄

고애만록 中 44~51.

쪽빛마루 2016. 2. 14. 05:15

44. 쌍삼 원(雙杉元)선사의 정진 / 장락 규(長樂珪)장주

 

 장락(長樂)의 규(珪)장주(藏主)가 말하였다.

 "내 지난 날 남북산(南北山)에 있을 때 쌍삼 원(雙杉元)스님과 함께 머물면서 그의 청백하고 고요한 품성을 보았다. 그는 걸을 때나 멈출 때나 앉을 때나 누울 때나 언제나 자신의 일대사 참구하기를 잊지 않고 낮에는 인적이 드문 고요한 곳을 찾아 고목처럼 홀로 좌선을 하고 밤에 잠을 자면서도 옛 고승의 화두를 들어 마치 잠꼬대하듯 작은 소리로 중얼중얼하니 그의 정밀하고 전일한 공부를 엿볼 수 있었다. 그 당시 나는 그가 앞날 불문의 큰 인물이 되리라는 점을 예견했었다. 그를 생각하면 언제나 얼굴이 뜨거워지고 식은땀이 흘렀다."

 이는 단교(斷橋)스님이 운곡(雲谷)스님에게 보낸 답서에 실려있는 이야기이다.

 

 

45. 석실 휘(石室輝)선사의 행리

 

 가흥부(嘉興府) 광효사(光孝寺)의 석실 휘(石室輝)선사에게 한 스님이 물었다.

 "명초(明招)스님이 승광(勝光)스님을 만나려고 문을 들어서는 순간 승광스님이 한 발을 아래로 늘어뜨린 뜻은 무엇입니까?"

 "거지가 밥그릇을 두드려대는구나."

 "또한 명초스님이 '기량이 다했구나' 하고서 소매를 털며 곧장 가버린 일은 무슨 뜻입니까?"

 "멍청한 새가 바람을 안고 나는구나."

 석실스님은 오랫동안 명극(明極)스님을 시봉하였고 뒷날 무준(無準)스님의 법제자가 되었다. 스님은 성품이 곧고 매서워 세도있는 벼슬아치도 감히 사사로운 일로 그를 간섭하지 못하였다. 경원부(慶元府) 창성사(彰聖寺) 주지가 되었을 적에 절제없는 관아의 횡포에 주지를 사임하니, 그 고을의 우두머리가 이 소식을 듣고 그를 만류하였지만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지난날 경산(徑山)에 승패(僧牌)를 걸어놓고 대중의 수좌승으로 지낸 적이 있다. 그의 법어는 타당하고 진실하였다.

 

 

46. 국사 진귀겸(國史陳貴謙)과 월림 사관(月林師觀)선사와의 만남

 

 국사 진귀겸(國史陳貴謙)이 지난 날 오회사(烏回寺)에 있을 때, 어느 날 밤 월림 관(月林師觀)선사와 앉아 이야기하는 도중에 월림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손님 가운데의 주인[賓中主]입니까?"

 "머리가 서로 닮았소이다."

 "무엇이 주인 가운데의 손님[主中賓]입니까?"

 "막야검(鏌鎁劍) 빗겨들고 바른 명령을 내리면 태평성대에 어리석은 무리를 목베는 일입니다."

 대답을 마치자 국사가 되물었다.

 "무엇이 손님 가운데의 손님[賓中賓]입니까?"

 이에 월림스님은 손을 흔들며 웃었다. 아! 진공의 기지를 상상해 볼 수 있다.

 

 

47. 무량 숭수(無量崇壽)선사가 태사 사위왕(史衛王)에게 보낸 편지

 

 무량 수(無量崇壽)선사는 무주(撫州) 사람이다. 태사 사위왕(史衛王)에게 다음과 같은 답서를 보냈다.

 

 "불법이란 어디에나 있습니다. 사무를 보고하고 판결을 기록할 때, 옷 입고 밥 먹을 때, 임금에게 충성하고 백성을 도와줄 때, 인재를 등용하고 훌륭한 이를 발탁하는 그 모든 데에 불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란 찾으려 해서는 안되고, 찾으려 한다 해서 찾을 수도 없다는 점입니다."

 

 지난 날 번양(鄱陽) 조봉사(刁峰寺)의 수좌승으로 있을 때 태사가 경구(京口) 금산사(金山寺)주지로 청하였으나 가지 않고 융흥(隆興) 감산사(感山寺)에 은둔하였다. 만년에야 태주(台州) 서암사(瑞嵓寺)에 주지해달라는 청에 응했으니 과연 비구의 면모를 잃지 않았다고 하겠다.

 

 

48. 석전 법훈(石田法薰)선사의 고구정녕한 말씀

 

 석전 훈(石田法薰)선사가 말하였다.

 "이왕 부처님 문에 들어와 부처님 밥을 먹으면 천왕의 문호를 쇄신하여 세인들을 구제해야 하는데, 그런 일에는 역시 적임자가 있는 법이다. 더구나 큰스님이라 일컫는 자라면 이름이 이미 그러하니 실제로는 어때야 하겠는가? 향상(向上)의 안목을 갖추고 대기대용(大機大用)을 얻어 인천(人天)을 열어주고 후학에게 많은 이익을 주어야만이 비로소 출가의 뜻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중 · 하 근기로 말한다면 이들 또한 인과법을 알아 부지런히 예불 올리고 아침 저녁으로 참선하고 경 읽으며, 절을 새로 짓고 옛절을 보수하는 등 무엇을 하든지간에 진실심을 운용해야 조금이나마 가까워질 것이다. 그리고 방장실(方丈室)에 앉아 모두 이루어 놓은 일을 자신이 독차지하면서 힘든 일은 남에게 떠맡기고 편한 일만 자신에게 돌려서는 안된다. 순식간에 백발이 되고 이는 누렇게 변하여 눈앞에 죽음이 닥치게 될 것이다. 예전 큰스님들은 시절인연이 이르면 어찌할 수 없어 자신의 얼굴을 스스로 쥐어박곤 하였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주지를 그만둔 뒤에도 더욱더 정진하였다. 그들은 사원의 크고 작음과 대중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천만인이 모여있는 총림 가운데 있거나 당신으로 있을 때라도 이와 같이 하루 스물네 시간 오로지 이 도만을 생각하여 오랫동안 끊임없이 공부한 까닭에 큰일을 밝힐 수 있었던 것이다."

 석전스님의 말씀은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는 이롭다"는 그것이다.

 

 

49. 불법대의 / 죽암 묘인(竹巖妙印)선사

 

 담주(潭州) 석상사(石霜寺)의 죽암 인(竹巖妙印)선사는 융흥부(隆興府) 사람이다. 도의 분위기가 준엄하여 만나는 사람마다 숙연히 심복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억재 진화(抑齋陳韡)가 담주자사로 있을 때, 용아사(龍牙寺)나 복엄사(福嚴寺)의 주지로 스님을 초빙하였으나 모두 가지 않았는데, 뒤에 또다시 석상사의 주지로 초빙하자 마지못하여 명을 따랐다.

 한 스님이 "무엇이 스님의 가풍입니까?"하고 물으니 "가풍은 물어 무엇하려고?"하였다. 다시 "어느 것이 불법의 큰 뜻입니까?"하니 이렇게 말했다.

 

소상강에 구름 걷히니 저녁 산모습이 뚜렷하고

파촉에 눈 녹으니 봄물이 불어나네.

湘潭雲盡暮山出  巴蜀雪消春水來

 

 도반인 수 고봉(秀孤峯) 스님과 개 무문(開無門)스님이 모두 스님을 우러렀다. 일생동안의 치밀한 기봉(機鋒)과 순수한 말씀은 월림(月林)스님을 친견한 데서 얻은 힘이 아니겠는가?

 

 

50. 거짓말 하는 도반을 나무라다 / 대천 제(大川濟)선사

 

 대천 제(大川濟)선사가 지난 날 변산(弁山)스님과 함께 불심(佛心) 노스님을 시봉하던 중 변산스님에게 바깥 일이 있어 노스님에게 미처 말씀드리지 못하고 외출하였다가 돌아오자 불심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이틀 동안이나 어디 갔었는고?"

 변산스님이 나갔다 들어온 적이 없다고 대답하자 때마침 대천스님이 곁에 있다가 참선하는 사람이 어찌하여 거짓말을 하느냐고 꾸짖었다.

 변산스님은 얼굴을 붉히고 식은 땀을 흘렸으며 그 뒤로는 더욱 말을 조심하였다. 지난 날 소묵(昭默)스님이 사심(死心)스님의 꾸지람을 받았던 고사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로서 담당(湛堂)스님은 그들 모두가 훌륭한 그릇이라고 감탄하였다.

 

 

51. 사대육신에 대하여 / 요당 제(拗堂濟)선사

 

 평강부(平江府) 호구사(虎丘寺)의 요당 제(拗堂濟)선사가 말하였다.

 "머리카락 · 손톱 · 치아 · 피부 · 근육 · 골수 · 뇌는 '땅[地]이라 한다. 침 · 콧물 · 고름 · 피 · 진액 · 거품 · 가제 · 눈물 · 정액 · 대소변을 '물[水]이라 한다. 따뜻한 기운을 '불[火]'이라 하고, 동작 · 회전은 '바람[風]'이라 한다. 이 네 가지 인연이 일시적으로 섞여서 허깨비 몸[幻身]을 이루니 반드시 주인공이 있어야 한다. 무엇을 주인공이라 하는가? 한번 말해 보아라."

 요당스님은 촉 사람이며 식암(息庵)스님의 법제자이다. 당시 별포(別浦)스님과 치절(痴絶)스님과 서로 우열을 겨루었으나 애석하게도 두 분은 모두 치절스님처럼 장수를 누리지 못하였다.

'선림고경총서 > 고애만록枯崖漫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애만록 下 7~12.   (0) 2016.02.17
고애만록 下 1~6.  (0) 2016.02.15
고애만록 中 37~43.  (0) 2016.02.13
고애만록 中 33~36.  (0) 2016.02.12
고애만록 中 27~32.   (0) 2016.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