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산암잡록山菴雜錄

산암잡록 上 29~36.

쪽빛마루 2016. 2. 22. 20:18

29. 쥐들의 보답

 

 은성(鄞城)의 관강소(官講所)에 두 스님이 함께 살았는데, 그 중 한 스님이 쥐가 설치는 것이 괴로워 크고 작은 두 개의 막대기를 가지고서 쥐덫을 마련하여 비치는 거울을 장치해 두었다. 쥐가 이를 건드리다가 덫에 걸리자 그 스님이 급히 뛰어나가 물을 가져다가 쥐를 처넣어 죽이려고 하였는데 같이 있던 스님이 차마 볼 수 없어 몰래 막대기를 들어 올려 쥐를 놓아 주었다. 이튿날 쥐덫을 놓았던 스님이 출타하여 함께 있던 스님 혼자서 잠을 자게 되었는데 보통 때와는 달리 많은 쥐떼들이 법석대는 소리가 들렸다. 이에 그 스님은 짜증을 내며 투덜거렸다.

 "내가 어제 저녁에 너희를 놓아 주었는데 너희는 도리어 이처럼 시끄럽게 구느냐?”

 아침 일찍 일어나 보니 그의 자리 앞에 파란 색 끈 하나가 놓여 있어 속으로 매우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며칠 후 그 스님은 그 끈으로 허리를 묶고 나갔는데 옆방에 있는 스님이 그것을 가리키며 "이것은 내 것이다. 침실에서 잃어버렸는데 어떻게 그대가 가지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 스님은 허리띠를 얻게 된 경위를 말해 주었으며 그때야 비로소 그날 저녁나절 쥐들이 떼를 지어 옆방 스님의 끈을 훔쳐 보답하려고 시끄럽게 떠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30. 혜홍 각범(慧洪覺範)스님의 「승보전」

 

 각범(慧洪覺範)스님의 「승보전(僧寶傳)」은 원래 「백선사전(百禪師傳)」이라 이름하였는데 대혜(大慧)스님이 처음 이 책을 읽은 뒤 그 중에서 19명을 뽑아내 불태워버렸다. 그후 각범스님은 황벽사의 지(知)스님에게 편지를 보냈다. 종고(宗杲 : 大慧)스님이 「백선사전」을 훔쳐 본 후 그 중 19명의 전기를 불태워버렸는데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다.

 각범스님은 당시 불쾌하게 생각하였지만 끝까지 19명을 「승보전」에 수록하지 못하였다. 사람들은 이에 대해서 승보전에 81명만 수록된 것은 9×9의 수효에 준한 것이라고들 하나 이 말 또한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일 뿐이다.

 

 

31. 공도사(恭都寺)의 정진과 게송

 

 철경(鐵鏡至明)스님이 하산사(何山寺)에 살 때 그의 문하에 공도사(恭都寺)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사명(四明) 사람으로 몸가짐이 청렴하고 불법 수행에 정진하며 날마다 법화경 한 권을 모두 외웠다.

 임종 때 아무런 질병과 고통이 없이 옷을 갈아입고 가부좌 한 채 열반하였는데 화장을 해도 혓바닥이 불타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은 그의 게송을 소리 높혀 읊조리며 추도하였고, 지금까지도 그 게송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어느날 밤 홀로 앉아 게송을 하였다.

 

온 산의 창아래 등잔불을 밝히니

화로에도 불이 없어 썰렁하구나

화두는 놔 두었다 그 이튿날 들자하고

도인은 종을 치러 또다시 누각으로 올라가네.

點盡山窓一盞油  地爐無火冷湫湫

話頭留向明朝擧  道者鼓鐘又上樓

 

 철경화상은 법좌에 올라 특별히 이 게송을 칭찬하였다.

 

 

32. 휴거(休居)스님과 동주(東州)스님의 문체를 평하다 / 남당(南堂)스님

 

 내가 본각사(本覺寺) 남당(南堂)스님을 방문했던 날 밤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가운데, 시문에는 섬세하고 통쾌한 차이가 있다고 언급하면서 선휴거(先休居)의 송별 게송을 예로 들었다.

 

누에고치가 집을 짓듯 스스로 얽어매어

백겹 천겹이 눈 앞에 놓여 있다가

이를 트고 나올 때에 온 몸이 나타나고

온 식구가 나루터 배 위로 오르게 되리.

如蠶作繭自包纏  百匝千重在面前

裂得破時全體現  渾家送上渡頭船

 

 뒤이어 동주(東州)스님의 차운(次韻)을 읊었다.

 

언제 동정에 얽매인 적 있으며

하필 미생전의 소식을 깨달을 필요가 있는가

고향 천리 길 이제사 돌아가는데

뭍에는 길이 있고 물에는 배가 있다.

動靜何曾涉盖纏  何須更透未生前

故園千里今歸去  陸有征途水有船

 

 남당스님은 다시 말했다.

 "휴거스님의 문장은 섬세하여 표백한 비단결같이 보이지만 동주스님의 통쾌한 기상에는 미치지 못한다.”

 

 

33. 선불도(選佛圖)놀이를 하다가 꾸지람을 듣다

 

 내 어린 시절 봉산사(鳳山寺) 택목료(擇木寮 : 선원의 요사)에 있었는데 공양 후 피곤함을 쫓기 위해 친구들과 선불도(選佛圖)놀이를 하였다. 일원(一源)스님이 이 소식을 듣고 정두승(淨頭僧 : 변소청소 소임)을 시켜 다음과 같은 게송을 보내왔다.

 

백천 제불과 그리고 중생을

한 장의 그림 속에서 비교하지 말고

마음 도장을 당장 가벼이 던져 버리면

당당하게 적광(寂光)의 도량에 높이 앉으리.

百千諸佛及衆生  休向圖中强較量

心印當陽輕擲出  堂堂高坐寂光場

 

 이튿날 아침 문안을 올리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옛사람들은 손톱 자를 겨를도 없었다는데 너희 후생들은 차마 세월을 허송할 수 있는가? 더구나 선불도 놀이에 있어서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를 가지고 주사위 하나 던지고는 '나는 성불하였노라'고 좋아하니, 그대들은 언제 어디든지 성불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는 것이다.”

 

 

34. 천박한 소견으로 윗사람들의 어록을 펴내다

 

 중모(仲謀)스님이 온주(溫州) 선암사(仙岩寺)에 주지할 무렵 천하는 바야흐로 태평하여 하루도 빠짐없이 선승들이 찾아왔다. 나는 명 성원(明性元), 서 영중(瑞瑩中)스님과 함께 셋이서 선암사에 갔었다. 성원과 영중은 시자로 있었고 나는 이미 장각(藏閣) 소임을 맡은 뒤였다. 때마침 보름이 되어 스님께서 법상에 올라 설법하였다.

 "한 번의 묵언으로 납승에게 대답하면 천둥이 우르렁대고 번갯불이 번쩍이고, 세 번 불러 그 뜻을 깨달으면 옥이 구르고 구슬이 돌며 칠팔십 번 해주면 정신없이 떠받히고 부딪혀 사람을 막히게 한다.”

 이어 주장자를 뽑아든 채 게송을 이었다.

 

어젯밤 서풍이 베갯머리에 불었을 때

끝없는 매미소리 나무숲이 시끄럽구나.

昨夜西風枕簟秋  無限蟬聲噪高樹

 

 그 후 그의 어록을 편집하던 사람이 '애새쇄(礙塞殺)' 세 글자를 '능유기(能有幾)'라고 바꿔썼다. 이는 말로 표현하는 어려움을 모르고서 천박한 소견으로 선배들의 말을 쉽사리 고쳐 써버린 것으로서, 수료학(水潦鶴)*으로 많은 부처님의 기어(機語)가 바뀐 일과 흡사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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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료학 : 비나야잡사(毘那耶雜事)에 나오는 고사. 아난이 비구들과 죽림원에 갔을 때 수료학(水潦鶴)이라는 비구가 게송을 읊고 있었다. "백세를 누리면서 수료학을 보지 못하는 것이 하루를 살더라도 수료학을 보는 것만 못하리"라고. 아난은 그것을 듣고 비구들에게 전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백세를 누리면서 생멸을 밝히지 못하는 것이 하루를 살면서 생멸을 밝히는 것만 못하리' 하셨느니라."

아난이 잘못 기억했다가 정법을 그르쳤다는 뜻으로 쓰임.

 

 

35. 황암 호두(黃巖濠頭)의 행각

 

 황암 호두(黃巖濠頭) 정안인(丁安人)의 휘(諱)는 각진(覺眞), 법호는 축심(竺心)이다. 처음 위우산(委羽山) 전절경(田絶耕)스님을 찾아뵙고 느낀 바 있어 가족을 버리고 토굴을 마련하여 혼자서 살아 왔는데, 용천사(湧泉寺) 고우(古愚)스님을 만나자 고우스님이 그에게 말하였다.

 "양가집 여자가 이쪽저쪽으로 달아날 때는 어떻게 하려는가?”

 "특별히 스님을 찾아 뵙겠습니다.”

 "나는 이곳에 그대를 받아들일 수 없다.”

 이에 정안인은 한 차례 손뼉을 치며 말하였다.

 "30년 동안의 공부가 오늘 아침 무너졌다.”

 고우스님은 그만두었다.

 이에 그곳을 떠나 안산(雁山) 춘우암(春雨菴)의 무제(無際)스님을 찾아가 문을 들어서며 말을 내뱉었다.

 "봄비가 주룩주룩 내리니 행인들은 질퍽거리는 것을 싫어한다.”

 이에 무제스님이 ”아니지, 아니지”라고 하자 다시 무슨 말을 하려다가 할(喝)을 듣고 쫓겨나오고야 말았다. 만년에는 고을에 가서 명인사(明因寺) 앞에서 승려들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한 스님이 보따리를 들고서 곧바로 침실로 들어오자 그에게 물었다.

 "너는 무엇하는 중이냐?”

 "행각승입니다.”

 "네 발밑의 짚신짝이 떨어졌는데 어찌하여 그것도 모르느냐?”

 그 스님이 대답하지 못하자 그의 보따리를 내동이치고는 쫓아냈다.

 "이곳엔 네가 발붙일 곳이 없다.”

 또 한 스님이 문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달마대사가 오시는구나.”

 "나는 달마스님이 아닙니다.”

 "분명 달마스님인데 콧구멍만 다르다.”

 어느 날 명인사의 비구니 규장로(奎長老)를 만나 물었다.

 "듣자하니, 노스님께서 간밤에 아이를 낳았다고 하던데 정말이오?”

 "말해 보아라, 아이가 남자겠느냐 여자겠느냐?”

 "닭은 등잔을 물은 채 달아나고 자라는 낚시대를 씹는구나.”

 

 

36. 우연찮은 경우에 환희심을 맛보다 / 육왕사 면(勉)시자

 

 육왕사의 면(勉)시자는 나의 친척 조카인데 어려서부터 참선에 뜻이 있었으나 불행하게도 요절하였다. 그는 천태산(天台山)과 안탕산(雁宕山)으로 떠나가는 한 시자에게 송별 게송을 지어 보냈다.

 

조과스님이 실오라기를 불어

시자는 깨치고 떠나갔네

그러나 말에 떨어지진 않았어도

이미 고정된 형식을 이루었네

 

천태산 마루턱의 저 구름과

안탕산 속의 나무 숲을

이번 떠나는 길에 잘 헤아려 보고

그 곳 주지의 이름일랑 함부로 건들지 말아라.

 

鳥窠吹布毛  侍者便悟去

雖不涉言詮  早已成露布

 

天台嶺上雲  雁宕山中樹

此去好商量  莫觸當頭諱

 

 임종할 때 다시 게송을 지었다.

 

남(生)도 본래 남이 아니오

죽음 또한 죽음이 아니로다

비마스님은 나무집게를 만들어 가르쳤고

구지화상은 손가락을 바로 세웠었지.

生本不生  死赤非

秘魔擎叉  俱堅指

 

 내가 한번은 그에게 어떻게 해서 깨닫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지난날 옥궤사(玉几寺) 전단나무 숲 속의 경안(經案) 옆에 앉아 있다가 우연찮게 규(珪)장주가 스님들과 함께 강론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 스님이 '향상사(向上事)'가 무엇이냐고 묻자, 규장주는 두 손으로 그의 주먹을 비틀어 머리 위에 얹어놓은 후 합장하고 '소로소로…' 하였습니다. 나는 이를 계기로 어떤 기쁨을 얻었고, 신없이 몽당(蒙堂)으로 뛰어와 달(達)수좌에게 말하니 달수좌가 미소를 지으며 '너 왔느냐?'라고 하였는데, 그 뒤 가슴 속이 후련한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내가 뒤에 규장주를 만나 그 이야기를 물어 보았더니 그는 얼굴이 새빨갛게 붉어질 뿐 감히 대답하지 못하였다. 다시 서서히 물어 보았더니, 그는 당시 그런 흉내를 낸 것은 그 스님을 놀려주려고 하였을 뿐, 사실 어떻게 해야했는지 몰랐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이 일이 말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바람이 불고 티끌이 일어나고 구름이 가고 새가 나는 것까지 모두가 사람을 도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그 뒤로 얼굴을 마주치면 그는 그냥 지나쳐 버렸다.

 지금보면 규장주는 그 스님을 놀려주려고 한 일이었지만 면시자는 여기에서 어떤 기쁨을 얻었다. 생각컨대 이는 부처님 생존시 어느 법회에서 어린 사미승이 가죽공을 가지고 장난삼아 늙은 비구의 머리를 때려 사과(四果)를 깨치게 만들었던 고사와 함께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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