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청빈하게 살다 간 말세의 선지식 / 석옥 청공(石屋淸珙)스님
석옥 공(石屋珙)스님은 도량사(道場寺) 급암(及菴)스님을 친견하고 뒤에 오흥(吳興) 하포산(霞浦山)에 은거하였는데 청빈한 생활로 시주를 바라지 않았으며 궁하면 밥을 먹지 않고 물만 마셨다. 인품이 자애롭고 자상하여 중생을 아껴주었고 게송을 짓고 일깨워주는 말도 많이 하였으니, 그는 참으로 말세의 선지식이었다.
66. 옛 터에 암자짓고 분수껏 살다 / 무견(無見)선사
무견(無見)선사는 선거 섭(仙居葉)씨의 아들로, 대대로 유학자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준수한 재주를 지녀 천령사(天寧寺) 고전(古田)화상의 내기(內記)로 있다가 서암사(瑞岩寺) 방산(方山)스님 회하에서 참구하여 그의 법요를 모두 터득하고서는 마음을 바꿔 가(可)장주를 데리고 함께 송대 고암(高菴)스님이 주석했던 화정산(華頂山) 옛 터를 찾아 암자를 짓고 살았다.
이 때부터 그의 법이 크게 퍼져 학인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승속이 모두 토지가 없으면 대중을 수용할 수가 없다고 여겨 간혹 토지문서를 시주하러오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스님은 모두 물리치고 겨울과 여름을 날 승복 한 벌로 지냈다. 공양이라고는 오로지 허기진 배를 채우면 족하였으며 좋고나쁜 음식을 가리지 않았다. 입적후 다비를 하자 갑자기 가슴에서 맑은 물이 솟아올라 마치 병 속의 물을 쏟아놓은
듯하였으며 콩알처럼 큰사리가 눈부시게 나왔는데, 지금까지도 산중에 봉안하여 공양을 올린다고 한다.
67. 절벽에서 떨어져 정(定)에 들다 / 단애 요의(斷崖了義)수좌
단애 요의(斷崖了義)수좌는 고봉(高峰)스님 회하에서 참구하였는데 법어를 깨닫지 못한다고 고봉스님이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떠밀어 버렸다. 그날 밤 많은 눈이 내렸으므로 대중들은 그가 이미 죽었으리라 여겼다. 이튿날 눈이 멈추어 도반들이 장작더미를 들고 그곳을 찾아가 그의 주검을 화장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스님은 고목 아래 반석 위에서 정좌를 하고 있었다. 그를 흔드니 눈을 번쩍뜨고 사방을 돌아보며 자신이 절벽 아래 눈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돌아와 다시 고봉스님을 뵈니 고봉스님은 말없이 그를 기특하게 생각하였다.그후로 그의 명성은 나날이 떨쳐 승속이 모두 그에게 귀의하였다.
스님은 도를 묻는 사람이 있으면 으레 주장자로 때릴 뿐, 말이나 얼굴색으로 나타내지 않았고 그들 스스로 깨닫도록 하였다. 요즘의 큰 스님들은 말로써 가르치는 이가 많은데 스님만은 그렇게 하지 않으니 높이 살 만 한 일이다.
68. 경산사 본원(本源)스님의 수행과 주지살이
경산사 본원(本源)스님은 법명이 선달(善達)이며, 선거 자씨(仙居 紫氏)자손이다. 젊은 시절 급암 신(及菴宗信)스님과 함께 행각하면서 소임을 맡지 않기로 다짐하였다. 강서지방에 머물 때 설암(雪巖)스님을 찾아뵙고 대중속에 섞여 그의 회하에 들어갔는데 어느 날 설암스님이 그의 출중한 인물과 법도 있는 행동을 보고서 그에게 당사(堂司)*라는 소임을 맡기려 하자 급암스님과 상의하니 급암스님이 말하였다.
"그대는 지난날 나와 맹세를 해놓고 이제 와서 어기려고 하는가? "
스님은 결국 당사 소임을 사양하였다. 그후 고향인 선거(仙居)로 돌아가니 마을 사람들이 다복사(多福寺)의 주지로 맞이하였으나 그곳을 버리고 호남지방을 돌아다니다가 복엄사(福嚴寺)의 주지가 되었다. 복엄사는 당나라 때 도관(道觀)이었던 것을 사대(思大)스님에 와서 선원으로 개조한 것이다. 그 당시 불평하는 도사들이 많자 사대스님은 그들의 후세를 모두 주지로 삼겠노라는 서약을 하였는데, 그 가운데 성은 목(木), 이름은 달선(達善)이라는 자가 있었다. 스님의 이름과 글자만 바뀌어 있을 뿐, 똑같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스님을 목도사(木道士)의 재생(再生)이라고 믿었다. 그후 절서(浙西)지방으로 돌아와 경산사 운봉(雲峰)스님을 뵙고 그의 문하에 들어가 깨침을 얻었다. 때마침 혜운사(慧雲寺) 주지자리가 비자 스님이 그곳 주지로 전보되어 처음 올리는 향불을 운봉스님에게 바쳤다.
그 후 보령사(保寧寺) · 정자사(淨慈寺) · 경산사의 주지를 지내면서 가는 곳마다 모두 기록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 스님은 주지하는 곳마다 침상을 마련하지 않고 밤마다 촛불을 밝히고 향을 사르며 정좌하였다가 아침이 되면 대중 처소로 나가는 것으로 일상을 삼았다. 또한 타고난 체질이 보통사람과는 달라 몹시 추운 날씨에도 성긴 갈포 옷을 입고 무더운 여름에도 두터운 솜옷을 입었으며, 사원에 남은 재산으로 경산 동쪽 산기슭에 대원원(大圓院)을 지어 행각승들을 맞이하였다. 어느날 스스로 때가 온 줄을 알고 대중을 모은 후 평생 행각하던 이야기를 끝마치고 곧 입적하였다.
총림에서는 승직을 지내지 않았다 하여 그를 낮추어 보는 자가 있지만, 지난날 백장(百丈)스님께서 사원의 소임 체제를 세우기 전엔 사람들이 오로지 도에만 힘썼다. 그리하여 마음을 깨쳐 불법을 짊어지게 되면 마치 하늘에 뜬 태양처럼, 온 누리를 흔드는 우레처럼 식(識)을 가진 모든 중생이 그의 빛과 일깨워줌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에 무슨 소임이 있었길래 그를 낮추어 볼 수 있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일이다.
---------------------------------------------------
* 당사(堂司) : 절의 당우를 관리하는 소임.
69. 역(易)수좌의 선정
역(易)수좌는 자가 무상(無象)이며 송 장군(宋 將軍)의 집안, 하씨(夏氏)의 아들이다. 팔힘이 남보다 뛰어나고 무술에 정통하여 일찍이 부친의 벼슬을 이어 받았다. 그러나 달갑게 생각하지 않다가 관직을 버리고 출가하여 상우(上虞) 봉국사(奉國寺)에서 잡일을 하다가 출가 삭발하였다. 그의 스승이 그에게 「심경(心經)」을 외우도록 하였는데 사흘이 지나도록 한 글자도 기억하지 못하자 그를 몹시 미워하였다. 어느 날 선 묘봉(之善妙峰)스님이 그 절을 지나는 길에 그의 스승에게 말하였다.
"이 사람은 글자를 모르고 오로지 꼿꼿하게 앉아 있는 것만 좋아하니 아마 선정(禪定)을 닦던 사람이 다시 태어난 성 싶다. 이 사람을 나에게 줄 수 없겠는가?”
스승은 그를 따라 가도록 흔쾌히 허락하였다.
처음 설두사(雪竇寺)에 이르러 방부를 들이고 부지런히 참구하며 누워 자는 일이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마른나무처럼 꼿꼿하게 선정에 들어 있었다. 그의 옆에 정(正)수좌가 계속해서 그의 동정을 살폈는데 7일이 지나서야 서서히 선정에서 풀려나 마음에 기쁨이 넘치는 양 깊은 밤에 회랑(回廊) 처마밑을 천천히 오가는 것이었다. 이에 정수좌가 "큰 일을 마쳤으니 기쁘겠소!” 하였으나 역수좌는 아랑곳하지 않고 앞에 보이는 종루를 가리키며 입에 나오는대로 게송을 읊었다.
또다시 정수좌의 말에 따라 첫 새벽에 지팡이를 흔들면서 길을 재촉하여 이틀 후에 화정산(華頂山)에 닿았는데, 계서(溪西)화상을 뵈려 하였으나 날이 저물어 벌써 산문이 닫힌 뒤였다. 산문 밖에서 잠을 자고 이른 새벽 산문이 열리자마자 들어가 계서화상을 뵈었는데 서로 문답하며 시험하는 동안 종지를 깨치고 향로대를 걷어차고는 곧장 그곳을 떠났다. 계서화상이 불렀으나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마침내 산을 내려오고야 말았다. 이윽고 항주 천목사(天目寺) 고봉(高峰)스님을 찾아뵈었는데 두 사람의 말이 딱딱 들어맞자 고봉스님은 그를 수좌로 삼았다.
지정(至正) 원년(1341) 명주(明州) 해회사(海會寺)에 와서 한 방에서 단정히 기거하며 모든 인연을 끊은 채 그림자가 문 밖을 나가지 않았으며 그의 곁에 도구(道具)가 떠나지 않으니 사람들은 모두 그를 존경하였다.
지정(至正) 갑오년(1354) 정월 느닷없이 시자승에게 다음 달 24일에 강동지방에 잠시 놀다 오겠다고 하였는데, 그 날이 되자 목욕 하고 옷을 갈아입고 행전을 찾아 발에 묶고 시자승의 부축을 받으며 부처님 앞에 가서 삼배를 올린 후 물러나와 가부좌를 하고서 대중스님들에게 결별을 고하였다.
"지난번에 내가 너희들에게 오늘 길을 떠나겠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말을 마치고 잠자듯 고이 열반하시니, 향년 99세이다. 7일 동안 관 속에 모셔 두었으나 얼굴빛이 선명하고 수족이 부드럽고 따뜻하여 마치 살아있는 사람 같았다. 다비를 하자 불길이 높이 솟구쳐 흩어지는 모습이 마치 수많은 기왓장이 하늘로 튀어오르는 것같았고 연기를 찾아볼 수 없었으며 다비가 끝난 후 사리가 많이 나왔다.
'선림고경총서 > 산암잡록山菴雜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암잡록 下 5~11. (0) | 2016.02.22 |
---|---|
산암잡록 下 1~4. (0) | 2016.02.22 |
산암잡록 上 57~64. (0) | 2016.02.22 |
산암잡록 上 51~56. (0) | 2016.02.22 |
산암잡록 上 44~50. (0) | 2016.0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