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원오심요圜悟心要

원오심요 下 66. 성도(成都)의 뇌공열거사(雷公悅居士)에게 드리는 글

쪽빛마루 2016. 3. 19. 04:15

66. 성도(成都)의 뇌공열거사(雷公悅居士)에게 드리는 글

 

 이제 본심을 확연히 비춰본다면 원융하여 가이 없는 것인데, 성 · 색 등 모든 경계가 어떻게 마주할 수 있겠습니까. 아득히 홀로 벗어나서 텅 비고 고요하며 밝고 오묘합니다.

 모름지기 철저하게 잡아지니고저 할진댄, 들뜨거나 천박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만 하면 당장에 위 없이 높고 끝 없이 넓으며, 깨끗하고 원만하여 번뇌도 없고 작위도 없습니다. 모든 성인이 이를 의지하여 근본을 지으며, 만유가 이로 말미암아 건립됩니다.

 응당 단박에 빛을 돌이켜 스스로 관조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형체를 끊고, 분명하고 완전하게 증득하여 천변만화에 조금도 변함이 없으면 이를 '금강왕'이라 하며, '법신을 뚫었다' 합니다.

 밥 먹는 사이나 행주좌와 무엇을 하든간에 훤히 사무쳐서 사물마다 전혀 간격이 없습니다. 이것을 두고 자기 마음을 하얗게 드러내고 깨끗하게 오롯이 밝혔다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무조건 지키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지키고 안주하면 바로 형식에 떨어집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매섭게 끊고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버릴수록 더욱 밝아지며, 멀리할수록 더욱 가까워집니다. 죽기를 무릅쓰고 거듭거듭 끊어서 명근을 끊어버려야 비로소 숨이 끊긴 사람이 되고 바야흐로 향상의 행리를 이해하게 됩니다.

 향상의 행리로 말하자면 자기만이 스스로 알 뿐인데, 그 앎이라는 것도 세울 수 없습니다. 석가 · 미륵 · 문수 · 보현 · 덕산 · 임제의 바른 눈으로도 감히 엿보지 못합니다. 이 어찌 대단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할 한 마디, 방 한 대, 일구일언, 미세하거나 거칠거나 색(色)이거나 향(香)이거나 일시에 꿰뚫어야만 무심 경계에 상응하게 됩니다. 이것을 어린 아이 기르듯 하여 화기롭고 텅 비고 담박하게 기르면, 티끌 속에 있다 해도 티끌에 물들지 않고 정묘(淨妙)한 곳에 있다해도 정묘함이 그를 거두지 못합니다.

 본성을 따라 인연 닿는대로 주리면 밥 먹고 목마르면 물을 마십니다. 착한 일에도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데 악한 일을 어찌 다시 하겠습니까. 그 때문에 "인연 따라 묵은 업을 녹일 뿐, 다시 새로운 재앙을 짓지 말라"고 하였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