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임간록林間錄

65. 강경한 지조로 ‘철면’이라 불리움/ 복엄 자감(福嚴慈感)스님

쪽빛마루 2015. 1. 12. 09:16

65. 강경한 지조로 ‘철면’이라 불리움/ 복엄 자감(福嚴慈感)스님

 

 복엄 자감(福嚴慈感)스님은 준엄하고 용모에 고고하고 강경한 지조를 지닌 사람으로서 총림에 빼어나, 당시 사람들은 스님을 철면 자감(鐵面慈感)스님이라 하였다. 강주(江州) 승천사(承天寺)의 수좌로 있을 무렵, 불인 요원(佛印了元 : 1032~1098)스님이 기주(蘄州) 두방사(斗方寺)의 주지로 옮겨가면서 그 고을 군수에게 천거하여 주지의 자리를 잇고 법제자로 삼고자 하여 자감스님에게 이를 이야기하니, 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저는 일이 이렇게 될지 생각지도 못하였는데 스님께서 끝내 저를 대중의 밥 끊이는 사람으로 추천하여 총림의 법석을 함께 이루고자 하시니, 그 은덕 감히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스님의 법제자로 삼고자 하신 부분에 대하여 말씀드린다면 저에겐 원래 스승이 계십니다.”

 불인스님은 마음으로 그에게 감복하였다. 그러나 이미 나온 말이기에, 그대로 마무리짓고 다시 바꾸지 않았다. 이에 그곳에서 개법하여 황룡 혜남스님의 법제자가 되었다.

 스님의 명성은 당대에 높았지만 처소에는 항상 걸망을 매달아 놓고 주장자를 방장실에 기대놓은 채 저녁마저 머물지 않고 곧 떠나가려는 형색이었다. 이에 고을의 군장(郡將) 이하 모든 사람이 스님을 존경하였는데, 새로 부임한 태수가 몰라보고서 사무적인 일로 군림하였다. 스님은 웃으며 게를 지어 관아의 뜨락에 던져놓은 채 인사도 없이 떠나와 버렸다. 게송은 다음과 같다.

 

선원은 송나라의 선원이요

고을은 송나라의 고을인데

고을 안의 선원에 머무름을 용납하지 않을 바엔

바루 하나 들고 오호를 유람한들 어떠하리.

 

院是大宋國裏院  州是大宋國裏州

州中有院不容住  何放一鉢五湖遊

 

 태수가 사람을 보내어 뒤쫓아갔지만 스님은 이미 강을 건넌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