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오가정종찬五家正宗贊

4. 풍혈 연소(風穴延沼)선사 / 896~972

쪽빛마루 2015. 2. 7. 08:00

4. 풍혈 연소(風穴延沼)선사

     / 896~972

 

 스님의 법명은 연소(延沼)이며, 여항 유씨(餘杭劉氏) 자손이다.

 처음엔 강원에서 지관(止觀)을 익히다가 이를 버리고 경청 도부(鏡淸道怤 : 864~937)스님을 찾아갔는데 경청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동쪽에서 왔습니다.”

 “작은 강을 건너온 적이 있는가?”

 “큰 배가 홀로 하늘에 떠도니 작은 강을 건널 게 없습니다.”

 “경강(鏡江)과 진산(秦山)은 날아가는 새도 건너갈 수 없는데 길바닥에서 주워들은 허튼 말을 지껄이지 말아라.”

 “넓은 바다도 전함의 위세에 오히려 겁내니 기나긴 강줄기에 돛대 날리며 오호(五湖)를 건널까 합니다.”

 경청스님은 불자를 세우며 말하였다.

 “이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그것이 무엇입니까?”

 “정말 모르느냐?”

 “나타났다 꺼졌다 폈다 말았다 하는 것을 스님과 함께 운용하겠습니다.”

 “별점[星占] 치는 사람은 헛소리를 듣고, 깊이 잠든 사람은 잠꼬대가 심하다.”

 “못이 넓으면 산을 감추고 살쾡이는 표범을 굴복시킵니다.”

 “죄와 허물을 용서할테니 얼른 나가라.”

 “나갈 수만 있다면 곧 나가겠습니다.”

 스님은 그곳을 떠나 북쪽으로 양주(襄州) 땅을 돌아다니다가 화엄 휴정(華嚴休靜)스님에게 귀의하여 그곳에 머물자 화엄스님이 물었다.

 “나의 ‘목우가(牧牛歌)’를 스님이 화답해 보시오.”

 “오랑캐 북치고 채찍을 휘두르니 소와 표범이 뛰는데

머언 마을 매화나무 가지마다 벙긋벙긋”

[羯鼓掉鞭牛豹跳  遠村梅樹觜慮도]

 그 후 스님께서 남원혜옹스님을 만났는데 남원스님이 물었다.

 “남방의 몽둥이[一棒]를 어떻게 헤아리는가?”

 “굉장하게 헤아립니다만 이곳의 몽둥이는 어떻게 헤아리겠습니까?”

 이에 남원스님은 주장자를 옆으로 누이고 어루만지면서 말하였다.

 “몽둥이 끝에 무생법인(無生法忍)이 기연을 만나고도 스승을 알아보지 못하는구나.”

 스님은 이 말 끝에 크게 깨치고 풍혈산에 나아가 남원스님의 법을 이었다.

 

 한 스님이 물었다.

 “옛 노래는 음률이 없으니, 어떻게 하면 화음을 이룰 수 있습니까?”

 “나무닭[木雞]은 야바반삼경에 울고 띠풀개[芻犬]는 새벽에 짖는다.”

 [木鷄啼子夜  芻狗吠天明]

 “스님의 가풍은 무엇입니까?”

 “학이 깊은 골에 있노라니 닭은 홰를 치고

 말은 천리를 갈 수 없는 데도 부질없이 바람을 쫓아간다.”

[鶴有九皐難翥翼  馬無千理謾追風]

 

 대중에게 설법하였다.

 “만일 상근기가 저마다 깨치는 데가 있으면 조금이나마 가야 할 길이 있겠지만 깨치는 데가 없는 사람은 저마다 영웅이라 아무데서나 생겨났다가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린다. 이는 마치 거북껍질을 지지는 것과 같아서 잘 지지면 점괘가 나타나지만 잘못하면 알아볼 수 없게 되니, 잘 지지려 해도 안될 때는 당장 짓뭉개버려야 한다.”

 영주(郢州) 태수의 청으로 관아에 나아가 법좌에 올라 말씀하셨다.

 “조사의 심인(心印)이란 무쇠소[鐵牛]의 기용과 같다. 떠나가면 심인이 머물고, 머물면 심인이 깨어지니 가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음은 심인이 맞는가 심인 아님이 맞는가.”

 그때 여피(廬陂) 장로라는 이가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나에게 무쇠소의 기용이 있으니 바라건대 선사는 심인을 내걸지 마시오.”

 “늘 고래낚시를 익혀온 사람이 큰 미끼를 던졌다가 개구리가 걸리자 한숨지며 진펄을 빙빙도는구나.”

 여피 장로가 멍하니 생각에 잠기자 스님이 악! 하고 할을 하며 말했다.

 “장로는 어찌하여 말을 못하시오.”

 장로가 무어라 하려는데 스님은 불자로 후려친 후 말을 이었다.

 “아는 이야기가 있으면 하나 해 보시오.”

 장로가 입을 열려고 하는데 스님은 또다시 한 차례 때렸다. 이를 지켜보던 태수가 말하였다.

 “불법이 왕의 법과 마찬가집니다.”

 스님은 그에게 말하였다.

 “무엇을 보았소?”

 “끊어야 할 것을 끊지 못하면 도리어 혼란을 불러들이게 됩니다.”

 이 말에 스님은 법좌에서 내려왔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부처 아닌게 무엇이냐?”

 “현묘한 말씀을 알 길이 없으니 스님께서는 딱 짚어 주십시오.”

 “바다 동편 언덕에 집을 지으니 동녘에 뜨는 해 가장 먼저 비치네.”

 “유와 무가 모두 없을 때는 어떻습니까?”

 “춘삼월 꽃길 진탕 노니는데 온 집안 시름젖어 빗 속에 문을 닫네.”

 한 스님이 물었다.

 “말을 하건 안하건 이미(離微 : 얽매임을 떠난 묘한 경계)에 걸리니, 어떻게 하면 건드리지 않고 통할 수 있겠습니까?”

 “내 항상 그리웠나니 강남 땅에 늦봄이 되면 자고새 지저귀는 곳에 꽃향기 그윽했다네.”

 

 찬하노라.

 

묘금도(卯金刀 : 劉)의 破字)는

참다운 출가인

 

천태 지관을 익히며

어릴 때 소 발자국 고인 물에 헤엄치다가

달마[少室]의 단전(單傳)을 참구하여

깊은 경지로 곧장 달려갔도다

 

몽둥이 끝에 무생법인이여

남원스님의 독에 맞아 독이 심장에 들어가고

별점치는 헛소리여

경청스님 대항하여 살쾡이가 표범을 굴복시켰네

 

띠풀개는 새벽에 짖고 나무닭 밤중에 우니

옛 노래 불러봐도 소리 이루지 못하고

늙은 학 나래치고 병든 말 바람을 쫓으니

그 가풍 이야기가 적지않게 파다하다

 

붓뚜껑의 생멸처를 엿보노니

거북 등의 지저봐도 어설픈 점쾌 분명치 않고

표주박으로 조사마음 헤아려 보려 하니

무쇠소의 기용은 가고 머뭄에 심인을 깨뜨리기 어렵도다

 

바다 가까이 동트는 땅에는 햇살 먼저 비친다 하니

핵심을 찔렀으나 그것도 말짱한 헛소리로다

먼 마을 매화나무 모두가 벙긋벙긋 하는데

목우가를 화답함은 어렵기만 하여라

 

유무를 모두 끊어버리니

온 집안 수심젖어 빗속에 문을 닫고

말을 하건 안하건 이미(離微)에 걸리니

삼월 꽃 사이에 지저귀는 새소리

 

그윽한 가운데 더 그윽하고

오묘한 가운데 더 오묘하니

말쑥한 절강스님

세상에 둘도 없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