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문
진각대사는 원력의 수레바퀴를 타고 이 땅에 자취를 내리시어 애욕의 그물을 찢고 티끌세상을 벗어나셨다. 지혜와 법에 대한 이해는 뭇사람을 뛰어넘었고 구도심은 참으로 간절하셨다. 벗을 고르고 스승을 찾아다니다 종지를 깨닫지 못하면 산이 험하거나 평탄하거나, 길이 멀거나 가깝거나를 생각지 않고서 어려움을 무릅쓰고 두 번 세 번 물을 건너고 산을 넘어 도중에 게을러지는 적이 없었다. 덕산스님의 인가를 받고 나서도 오히려 마음에 흡족하지 아니하여 다시 암두스님의 깨추쳐 줌과 권장을 얻고 나서야 비로소 오산진에서 도를 이루었다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스님께서 옛 땅에 돌아와 이 절을 창건하시니 부르지 않은 대중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수용할 곳이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스님께 승당 입실한 제자는 45분이었는데, 그 가운데 운문스님과 현사스님이 상수가 되었다.
그때 학인들을 간파하던 기연과 말씀들이 책에 실려 있었다. 그러다가 전란에 불타고 좀이 쓸어 훼손되어 만들어지고 허물어진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적임자가 있어 실추된 것을 제창하고 훼손된 것을 보완해 준 덕분에 오늘에 와서 사라졌던 옛 모습을 찾게 되었다.
주지 성암 명(性菴明)스님은 도가 언어문자에 있는 것이 아니지만 언어문자가 아니면 도가 드러날 수 없음을 생각하였다. 더욱이 분에 넘치게 무거운 기대를 짊어진 몸으로서 어찌 조사의 도가 영영 느슨해지고 퍼지지 않아서 후학들이 눈이 멀게 되는 꼴을 차마 앉아서 볼 수 있겠는가 하고 개탄하였다. 그러한 나머지 사방을 찾고 더듬어 도산(道山)의 상월루(霜月樓)에서 어록의 유본을 찾아냈다. 그것을 베껴 공인에게 인쇄하도록 명하였고 일이 끝날 무렵, 이 기록으로 후학을 일깨우고자 나에게 글을 부탁하였다.
생각하니 그가 손님이나 학인을 상대하는 일만 해도 번거롭고 바쁜 터에 조사의 기연과 말씀들이 흩어질까 근심하여 빠지고 잘못된 부분을 정리 오완하였으니 그 뜻을 높이 살 만하다. 그러므로 이 어록의 개괄적인 내용을 써서 끝에다 붙이는 바이다.
대명(大明) 성화(成化) 갑진년(1484) 11월 16일, 전 복주부(福州府)의 승강(僧綱)이며 사도강(司都綱), 겸하여 고산선사(鼓山禪寺)의 85대 주지인 지명(智明)의 향을 사르고 절하며 기록하다.
'선림고경총서 > 설봉록雪峰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발문 (0) | 2016.08.01 |
---|---|
서문 (0) | 2016.07.28 |
8. '24경시'의 운을 따름 18~24. (0) | 2016.07.26 |
8. '24경시'의 운을 따름 9~17. (0) | 2016.07.22 |
8. '24경시'의 운을 따름 1~8. (0) | 2016.0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