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평생의 벗 향곡스님 97. 평생의 벗 향곡스님 성철 스님이 1981년 조계종 종정에 추대되었을 때 처음으로 한 말이 있다. "향곡이 살아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아했겠노…." 향곡(香谷) 스님은 그렇게 성철 스님이 한평생 잊지않은 도반(道伴.구도행의 동반자) 이었다. 두 사람은 20대 후반 한창 구도열이 왕성하던 시절 만났다. 성.. 산은 산 물은 물 2010.01.22
96. 道伴 청담스님 96. 道伴 청담스님 성철 스님은 괄괄한 성정 탓인지 가까운 도반(道伴.구도행의 동반자) 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다. 대신 몇몇 가까운 도반들과는 무척 허물 없이 지냈고, 그 중에서도 청담(靑潭) 스님과는 더욱 그랬다. 성철 스님이 출가시킨 청담 스님의 딸, 묘엄(妙嚴) 스님이 직접 성철 스님으로부.. 산은 산 물은 물 2010.01.22
95. 대불련과의 인연 95. 대불련과의 인연 성철 스님이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대불련) 와 인연을 맺은 것은 한국불교의 미래에 대한 기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인 듯하다. 성철 스님은 당시를 얘기할 때면 언제나 "젊은 불자들이 새로운 불교, 대중의 불교, 인간의 종교를 창조하는 데 역군이 되어 줄 게야"라고 말하곤 했다. .. 산은 산 물은 물 2010.01.19
94. 최초의 사자후 94. 최초의 사자후 성철 스님이 대구 팔공산 파계사 부속 성전암에서 10년간 동구불출(洞口不出.일주문 밖을 나가지 않는 생활) 을 마친 것이 1965년이다. 그 해 여름 스님은 경북 문경 김용사로 옮겨 하안거(夏安居) 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66년 여름 하안거 기간에 비로소 사자후를 토했다. 당시 .. 산은 산 물은 물 2010.01.19
93. 뜨거운 학구열 93. 뜨거운 학구열 성철 스님이 대구 파계사 부속 성전암에 머물던 10년간 스님을 줄곧 모셨던 첫번째 상좌 천제 스님은 그 시절을 '외부와의 철저한 단절', 그리고 '뜨거운 학구열'의 시절로 요약한다. 꼭 필요한 외부와의 창구역은 천제 스님의 몫이었다. 당시 스무살 전후로 행자였던 천제 스님은 필.. 산은 산 물은 물 2010.01.19
92. 방대한 장서 92. 방대한 장서 참선을 강조하느라 늘 "책 읽지말라"고 가르치던 성철 스님 본인은 정작 책을 아끼는 장서가이자 독서광이었다. 성철 스님이 거처를 옮길 때마다 한바탕 큰 일을 치러야하는 것이 수천 권에 이르는 장서(藏書) 를 옮기는 일이다. 백련암에 자리 잡고서는 아예 '장경각(藏經閣) '이란 별.. 산은 산 물은 물 2010.01.19
91. 성전암 10년 칩거 91. 성전암 10년 칩거 성철 스님의 수행 중 가장 치열하면서도 오랫동안 계속된 정진은 단연 대구 파계사 부속암자인 성전암에서의 칩거 10년일 것이다. 성철 스님은 당시 격동하던 불교계의 흐름을 외면하고, 성전암 인근에 가시 울타리를 쳐 스스로를 외부와 단절시킨 가운데 길고 긴 정진에 몰입했다.. 산은 산 물은 물 2010.01.19
90. 봉암사 탈출 90. 봉암사 탈출 한국불교사에 한 획을 긋는 봉암사 결사는 6.25를 앞둔 불안한 상황에서 중단될 수 밖에 없었다. 전쟁발발 직전 빨치산들이 백두대간을 타고 남북을 오가며 게릴라전을 벌였으며, 경북 문경 봉암사는 빨치산들이 오가는 깊은 산중 길목에 있었던 탓이다.봉암사 결사에 동참했던 도우 스.. 산은 산 물은 물 2010.01.19
89. 공주규약(共住規約) 89. 공주규약(共住規約) 성철 스님과 도반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산다' 는 취지에 맞춰 개혁불교의 틀을 갖추어가던 봉암사 결사. 그 정신을 오늘까지 생생하게 전해주는 문서가 있다. 성철 스님이 직접 붓을 들어 썼던 일종의 행동지침, 즉 '공주규약(共住規約) ' 이다. 성철 스님은 같은 내용을 .. 산은 산 물은 물 2010.01.19
88. 엄격한 봉암사 수행 88. 엄격한 봉암사 수행 봉암사 결사가 얼마나 엄격하고 힘들었는지는 당시 같이 살았던 노스님들로부터 거듭 확인된다. 서울 도선사 선원장인 도우(道雨) 스님은 1943년 법주사 부속암자인 복천암에서 성철 스님을 처음 만나 봉암사 결사에 동참했던 분이다. 도우 스님의 기억. "해인사에서 총림을 만.. 산은 산 물은 물 2010.01.19